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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연 Aug 07. 2021

"세상을 느리게 살아가는 법"

글을 쓰는 사람과 그가 써 놓은 글의 선한 영향력을 믿는다.

"세상을 느리게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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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배운 도둑이 날새는 줄 모른다는 얘기가 있다. 왜 하필 도둑에 비유했는지는 모르지만 어감만 봤을 때 어떤 느낌인지 누구나 알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 뒤늦게 뭔가를 하게 됐는데 누구보다 몰입한단 얘기다.


난 여기서 '늦게배운다'는 사실에 좀 더 이입이됐다.

내 직업 특성상 세상 돌아가는 일에 누구보다 관심을 갖고 빠르게 대처해야 하고, 더 자세히 알아봐야하기 때문에(그런데 정작 개인적인 일은 뒷전인, 중이 제 머리 못깎지만..) 저 '늦게' 라는 단어는 생각해보지 않은 단어였다.

(다른 기자보다 늦으면 소위 물먹는다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근데 요샌 새삼 느린 것의 미학에 눈을 떴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 중에는 이슬아, 문보영 등이 있다. 이른바 MZ세대(2030세대)에 속하는 90년대생 작가들이다.

특히 문 작가는 유튜브에 브이로그를 꾸준히 올리는데 난 그녀의 일상 구경을 좋아한다.

최근에 문 작가는 운전면허를 (이제야)땄다는 사실에 나는 처음에는 조금 놀랐다.

난 주변에서 하도, 대학 들어가자마자, 혹은 직장잡기 전에 따야한다고 독촉을 해서 장롱면허가 될 지언정, 부랴부랴 땄었기 때문이다. 물론 후회는 없다. 다만, 아 이런 인생도 있구나 싶었다.

그녀는 본인만의 삶의 속도에 맞춰 하나하나 도장깨기를 하고 있었고, 그렇게 꽉 찬 개성을 가지고 살고있기 때문에 그녀를 닮은 글이 하나씩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글은 읽고있으면 따뜻한 느낌이 든다)


누구에게나 '한 때'라는게 있다. 젊었을 때 해봐라, 여행이 최고다 하는 말들은 다 옛말이다 싶다. 물론 그것들이 좋긴하다. 뭐든 경험이라서 피가 되고 살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자 갖고있는 성향이나 형편이란게 있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우르르 몰려가면 결국 그 정도 사유밖에 하지 못한 대중 의존적인 사람이 될 뿐이다.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는데 그만큼 본인만의 삶이 있는거다.


나도 기자로 살면서 워낙 하루에도 많이 듣고 캐내고 하다보니 쉴 때는 혼자있는 시간을 즐긴다. 친사회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돼야한다는 주류의 미학을 거스르는 행동이다. 물론 사람만나 에너지를 얻고 또 다른 정보를 들어야 하지만, 난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않으면 어떤 상황에서 오롯히 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없다.

또 이렇게 글을 쓰지 않으면 단단한 삶의 근육을 얻지 못한다.

가장 좋아하는 건 책과 글쓰기다. 누군가에겐 책이 지루한 물건일 수 있지만 난 나를 살리는 수단이다.

남들이 캠핑간다고, 여행간다고, 혹은 결혼을 하거나 좋은 데를 간다고 sns계정을 그 모든 것들로 채워놓는다 해도, 나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그렇게 때로는 느리게 살아가는 세상이 (요즘말로)찐이다.

그러다보면 그 '한 때'가 언젠가 또 불현듯 찾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늦게 눈을 떠서 누구보다 전문가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필요한 또다른 준비물은 뻔뻔함이다. 어떤 종류의 뻔뻔함 이냐면, 무슨 생각이든 내게 유리하게 하고, 긍정적으로 하며, 두 번 이상 생각하지 않은 채로 고민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 이상은 고민해봤자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만의 사유를 삶에 차곡차곡 쌓다보면 언젠가는 단단해져 있을 거다. 그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으면 또 함께 걸어가면 되는 거고. 예의를 갖추고 최선을 다하되 속박하지 않고 끌어당기기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느리게 사는 삶이 갖는 여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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