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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연 Aug 08. 2021

"동생과 아르바이트"

올해 초 취재해 보도한 내용. 코로나19가 스며든 일상은 너무 서글프다.

"동생과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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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나 떨어졌음."

대학생인 동생이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고와서 한 말이다. 그마저도 아주 어렵게 구한 면접자리였다고 했다. 그 뒤로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또 면접을 보곤했지만 결국 지금까지도 구하지 못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면 어찌어찌 구할 순 있겠지만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 입맛에 맞는 알바자리 찾기란 더더욱 힘든 상태다.


코로나19는 모든 사람의 일상 속에 곳곳이 (안좋게)스며들었다는 걸 또 한 번 실감했다.


올해 초 코로나19가 다시 창궐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취재해 보도했던 '대학생알바,  하늘의 별 따기' 리포트가 내 동생 얘기가 된 거다. 동생은 군대갔다오니 코로나19로 딴 세상이 돼있다고 했다.(물론 그가 군에있을때에도 이미 시작됐지만)


취재했을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아르바이트인 카페나 편의점, 스키장 등의 시즌알바 자리가, 전부 줄거나 없어져서 학생들은 방학동안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공부만 해야한다고 했다.

그런데 공부할 공간조차도 학교가 문을닫으면서 도서관도 이용할 수 없게돼 마땅치 않았다. 학생이 사라지니 대학주변 상권도 무너지기 일보직전 이었고, 원래 같았으면 점심저녁 테이블 20번 이상은 충분히 돌렸을 고깃집은 점심장사만 겨우 할 정도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문 닫는 식당이 속속 늘었고, 그러니 알바자리는 커녕 그곳들은 가족경영도 힘에 부쳐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무렵을 떠올려보니 새삼 알바 르네상스기였단 생각을 했다. 당시엔 알바몬이나 알바천국 그리고 학교 구인구직 게시판도 매우 활발했다.

하고싶거나 급전이 필요할 때 검색해보면 사람구하는 곳도 제법 많았고, 또 막 생겨나는 상점도 많았기 때문에 늘 자리가 있었다.

나도 처음엔 화장품 로드샵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경력을 쌓기 시작해서, 음식점, 카페, 학원 데스크, 학원강사, 빵집, 과외 등의 일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년 후, 세상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자 모든 시계는 멈췄다. 올해는 그나마 초기 창궐시기인 1년전 보다 조금은 일상을 회복하려는 지혜들이 모아지고 있지만, 연일 전국 확진자 천 여 명이 넘는 상황에서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한 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동생은 어찌보면 그 당연했던 기회들을 타의적으로 박탈당해 버린 것이고 그것에대해 왠지모르게 도의적으로 미안함이 든다.

무섭게도 알바 빈궁기가 비단 아르바이트에서 그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취업난은 더 극심해져 갈텐데 그 안에서 온갖 불법과 편법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현명한 사람이 되어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유유히 헤엄쳐 빠져나갈 수 있어야 겠지만 그렇게되려면 수많은 인내와 능력이 필요할테다.


어렵고 힘든 싸움이 될텐데 그 길을 선배로서, 누나로서 환하게 비춰주지는 못할망정 나도 먼저 나 살길을 찾아야 할테니 씁쓸하다.


#아르바이트 #기자의수첩 #기자 #기자단상 #단상 #대학생알바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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