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연 Sep 01. 2021

"풍선사회"

글을 쓰는 시간이 하루 중에, 아니 내 일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소중하다.


"풍선사회"

-

나이가 하나씩 들면서 참는 것도 하나씩 늘어간다. 예전엔 화도 내보고, 소심한 복수를 하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도 봤지만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단걸 알았기 때문일까. 

(어쩌면)참는다고 쓰고 포기한다고 읽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포기하는게 늘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화를 내는 사람만 결국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잘 살펴보면, 화낸 사람은 혼자 뒷목잡고 마음의 병이든 뭐든 병이란 병은 다 얻는데, 정작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두다리 뻗고 '난몰라요' 하고 잘만 산다. 회사에서도 일은 결국 그런 사람을 요리조리 잘 피해가고, 화내고 망할놈의 책임감을 갖고 있는 사람한테만 몰리게된다. 자석처럼. 그럼 결국 그사람은 자의든 타의든 그곳을 떠나게 되고, 결국 분노유발자만 남게 된다는 아이러니하면서도 웃픈(웃기면서도 슬픈)현실.


드라마에서 보면 상상씬 있지 않나. 화가 나서 다 뒤집어 엎고 욕하고 난리를 치다가 결국은 다시 (고요하디 고요한)현실. 그저 잠시 나의 분노를 유예했던 것.

조상들은 이런 말도 만들어냈다. '참는게 미덕'이라며, 한 번을 참으면 백날이 편하다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무조건 참아내는게 능사는 아닐 때도 있다는 얘기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인줄 아는 무례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는 적어도 그렇다. 배려가 배려로 통하면 좋으련만, 그런 사람을 사회 속에서 찾는다는 건 그야말로 서울에서 김서방찾기, 모래 속에서 떨어뜨린 큐빅찾기다.


또, 한가지 일을 해결하고나면 또 어김없이 또 다른 문제가 터지고 마는 사회. 풍선을 닮았다.

이쪽을 누르면 또 다른 쪽이 솟구쳐 오르는. 그 힘의 균형을 찾지 못하면..터지고 만다.

그러니 터지기 전에 잘 조율해서 그 팽팽하고도 평평한 상태를 잘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단상노트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단상이나 글귀들이 꽤 적혀있는데, 최근에 적은 글귀는 다음과 같다.

'자신을 너무 낮추니 상대는 그런 나를 쉬운 사람으로 여겨, 딱 그만큼만 대해 주었다.'

'혼자 너무 매달리지 말고, 혼자 잘해주며 상처받지 말고, 혼자 힘들어하며 아파하지 말고.'


또 다른 글귀에서는, 자신을 잃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둥그스름하게 사는 편이 낫다고 그랬다.

모든 존중은 나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온전한 내가 있어야 남을 배려하든 뭐든 할 거라는 뉘앙스의 글이다.


해결되지 않는 걱정이나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 갇힌 인간은, 꼭 겪어보고 나서야, 또 당하고 나서야 해결방법을 찾는다거나 소중했다는 걸 깨닫곤 한다.

다시 말해 무엇이든 타이밍이 있다는 건데, 그러니 모든 것에 연연해 할 필요도 없고 일희일비 할 필요가 없다. 온연한 내가 되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다보면 때가 올 테니 말이다.


글을 써도, 내가 정말 공들여 쓴 글보다도 생각나는 대로, 수필이라는 말그대로 손 가는대로 생각을 끼적여 논 글이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기도 하더라.


취재를 하면서 또 숱하게 취재원을 만나면서 드는 생각도 이거다.

하루는 뿌듯한 취재를 해서 보도를 했어도, 그 다음날 타사에 소위 물먹을 수(나만 그 기삿거리를 놓치는 것)도 있다. 오늘은 취재원과 잘 지냈는데 내일은 싸워서 원수처럼 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일희일비하자면 내 감정은 닳고 닳아 결국 없어질 거다. 사회는 필연적으로 풍선을 닮아있는 걸.


마음먹고 사람을 찾아 위로받고 싶은 날엔 꼭 혼자인 법이고, 어쩐지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고 싶은날엔 귀신같이 약속이 없다. 이미 선약이 잡힌 날엔 그날따라 복수의 약속을 제안해오기도 한다. 뭐 이런.


좋아하는 감정도 마찬가지다. 너무 좋아한다고 티를 내서도 안되고 또 그것만 또는 그 사람만 찾아서도 안된다.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커피를 줄였다'는 말도 요새 심심찮게 인스타그램에서 봤다. 정말 와닿는 말이라 여러번 캡처 해두고 저장해뒀다.


내가 이 조직에서, 회사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는 와중에도 하루가 가고, 어떤 날은 당장 사표를 내고 싶다가도 또 어느 날은 그럭저럭 버틸만 하기도 하고 뭐 그렇다.

그런 날이 쌓이고 쌓여서 후배도 생기고 그 후배는 또 후배를 받고, 난 선배들과 후배들 사이에서 낀 세대가 되고. 


정말 뭐하나 마음대로 안된다. 

이런, 풍선같은.


#단상 #기자 #기자단상 #취재후기 #낀세대 #MZ세대 #회사






작가의 이전글 "카페 노마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