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릿하고 쌉쌀한 어른의 연애를 그린 책
이 책들이 맞을 것 같은 분
1) 아직 아닌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됐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아진 분
2) 마음을 내보이는 게 전보다 더 어려워진 분
1. 서유미, 《홀딩, 턴》(위즈덤하우스, 2018)
“나중에 이 장면을 떠올리며 이 시기를 돌아보면 무엇이 생각날까. <라 붐>의 장면들 같지 않으리라는 건 확실했다.”
간략한 내용 설명
— 아마 소설의 시작이 주인공인 ‘지원’과 ‘영진’의 미적지근한 온도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시작부터 결론을 보여주고 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 지원과 영진은 포크댄스 동호회에서 만났어요. 첫눈에 반한 건 아니었지만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조금씩 천천히 가까워집니다. 기다리고, 애태우고, 얼굴이 붉어지는 순간들이 있었죠. 지원은 결혼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거듭되는 영진의 결혼하자는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맙니다.
— 책 소개를 다시 보니 5년의 결혼 생활이라고 나와 있더라고요. 5년은 얼마나 길고 또 짧은 시간일까요? 둘은 그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해 체념하는 법을 배웁니다. 둘에게 결혼은 끝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구애의 말이 거듭되는 생활이 아니었어요. 거듭된 체념은 결국 둘을 이혼에 가닿게 만듭니다.
인상적이었던 점
— 결혼과 이혼이란 게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싶었어요. 물론 결혼과 이혼에 대해 다루는 책은 너무 많지만 《홀딩, 턴》은 사귀게 된 연인이 어떻게 결혼을 했고, 또 어떻게 이혼에 가닿는지가 주축이 되어 나와서 좀더 빠져들어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나를 설레게 하는 얘와 결혼하면 어쩜 이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같은 생각이랄까요.
— 사랑이 생겼다 사라지는 과정이 현실적이었어요. 왜 마음은 영원하지 못할까요? 그래서 마음인 걸까요? 정말 어렵습니다.
사족
— 이건 아주 개인적인 경험이었는데 이 소설의 배경이 봄이거든요. 이런 정보를 전혀 모르고 저도 언젠가 봄에 이 책을 읽었어요. 지하철에서 내려 벚꽃이 가득한 길을 책을 읽으며(전자책으로 읽었습니다) 천천히 걷는데 마침 제가 읽던 부분이 딱 그런 장면이었어요. 벚꽃 가득한 길을 지원이 걷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의 시공간적 배경이 책 속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잖아요? 그래서인지 봄만 되면 이 책이 생각나요.
2. 손원평, 《프리즘》(은행나무, 2020)
“마음이란 건 언제나 그냥 달려나가버린다.”
간략한 내용 설명
— 《아몬드》로 이름을 떨친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입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남녀 4명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입니다. 인물들은 모두 얽혀 있고, 이들의 관계와 마음은 사계절에 걸쳐 서서히 혹은 급격히 바뀝니다.
— 4명이 나오긴 하지만 가장 주축이 되는 건 30대 중후반인 ‘재인’과 ‘도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둘은 20대 때 만난 사이예요. 사귄 건 아니었지만 서로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런데 좋아한다고 다 잘되는 건 아니잖아요. 재인과 도원도 그렇게 엇갈렸고 시간이 흘러 재인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이혼도 하게 돼요. 모두 깔끔하게 잊어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시간이 지난 뒤 둘은 아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됩니다.
— 또 다른 주인공 두 명은 20대 ‘호계’와 ‘예진’입니다. 둘은 동네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지만 호계가 조금씩 예진에게 감정을 느껴요(쓰고 보니 재인과 도원이 어렸을 때의 모습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네 명 모두 각자 조금씩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상대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언제나 상처는 절대적인지라 그 때문에 마음을 닫기도 하고 아파도 합니다.
인상적이었던 점
— 이상한 우연과 재회가 좀 슬펐어요. 서로 마음속에 품은 꿈을 향해 몸과 마음과 시간을 모두 던지고 있던 20대에 만난 재인과 도원이 10년이 넘은 30대 중반에 너무 의도치 않게 다시 마주친다는 게 뭔가 좀 더 아릿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아, 왜 그때였을까요?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혹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
— 나이가 드니 마음껏 내달리지 못하는 마음들이 잘 표현됐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해야 할 게 많아지잖아요? 이 좋음과 설렘이 영원하지 않을 것도 알고, 지금 좀 좋다고 마구 내달리면 어쩌면 상처를 받게 될지도 모르고… 많은 생각 때문에 갈수록 뜨거운 연애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어렸을 때는 ‘아니, 좋으면 좋은 거지, 왜 그렇게 다들 생각을 하지?’ 했는데! 정말 계속 생각을 하게 되네요. 내달리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접지도 못하는 마음이라니… 나이가 들수록 계속 어리석어지는 것 같아요.
사족
— 이 책이 처음에는 좀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졌는데요(예를 들면 너무나 큰 우연들이 겹치는 것, 호계 같은 캐릭터 등), 마지막까지 읽고 보니 현실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가 행복하고 잘 맺어지는 연애는 현실에 좀처럼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약스포..)
마음이 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고 갈수록 더 망설이게 되는 것 같아요.
신중해진 건지, 현명해진 건지, 두려움이 많아 겁쟁이가 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 어차피 계속 모르겠죠? 그러니 어느 쪽에 계시든 몸이라도 편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손 번쩍 들어 인사 보내요.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