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필사적으로 관여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을 좋아할 것 같은 분
1) 문화/예술 산업 종사자
2) 열심히 하지 않는 쪽보다 열심히 하는 쪽을 택하는 분
3) 일본 문학을 좋아하는 분
츠지무라 미즈키, 이정민 옮김, 《슬로하이츠의 신》(전2권)(몽실북스, 2020)
간략한 내용 설명
- 두 권짜리 책에게 간략한 설명은 어쩐지 미안한 일이지만.. 딱 한 줄로 설명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은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편집을 하는 등 창작을 하는 이들이 '슬로하이츠'라 이름 붙인 오래된 집에 모여 살게 된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어요.
-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뤄지지만 이들을 '슬로하이츠'로 불러들인 이는 까다로운 성격을 가진 유명 각본가 '다마키'입니다. 다마키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물어요. "함께 살지 않을래?" 슬로하이츠를 셰어하우스로 만드는 거죠. 유명 소설가 '고키', 어린이 만화를 그리고 싶어 하는 '가노', 그림을 그리는 '스미레', 영화감독을 꿈꾸는 '마사요시' 등이 함께 살게 됩니다.
- 사실 이들에게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얽혀 있긴 한데요, 너무 자세히 말하면 스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래봬도 약간의 추리/미스터리 요소가 섞여 있거든요.
좋았던 점
- 다들 꿈을 좇아 열심히 살아요. 제가 이 책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사실 뭔가를 쓰고, 그리고, 그걸 세상에 내보이고 하는 것들이 되게 막막한 일일 수 있잖아요. 나는 좋아서 했지만 사람들은 싫어할 수도 있고 어떻게 어떻게 세상에 보여주긴 했지만 그게 수익과 연결되지 않을 확률도 높고요. 그런데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그런 막막함에 좌절하기보다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걸 하려 해요. 잠시 고꾸라져 쉬어갈지언정 결코 포기는 하지 않습니다. 정말 반짝거리는 사람들이었어요.
- 서로를 많이 존중해줘요. 함께 모여 사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지만 창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다니, 어쩐지 생각만 해도 예민할 것 같지 않나요? 또 그중 몇 명은 자신들의 분야에서 아주 굉장히 잘나가는 사람들이에요. 누구는 데뷔조차 못했는데 말이죠. 한국 드라마에서는 시기와 질투가 넘쳐나며 음모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여기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중간에 조금 악한 사람이 등장하고 서로 싸우는 장면도 나오긴 하지만 뭐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수준이고요. 그러니까 괜히 조마조마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리려는 세계가 굉장히 선하달까요? 그래서 마음이 편해져요.
- 책을 쓰는 사람과 읽는 이에 대한 마음 묘사가 탁월해요. 이 책엔 창작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붓을 들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펜을 드는지 잘 나와 있는데요, 그중 2권 중후반부를 잔뜩 차지한 소설가 '고키' 얘기에 정말 엄청나게 많은 눈물을 흘렸어요.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였거든요. 왜 햇볕을 오래 보고 있으면 눈이 부시면서 눈물이 흐르잖아요? 딱 그거였어요.
- '고키'는 10대들에게 특히 유명한 소설가였는데요, 어느 날 동반자살 사건이 벌어져요. 근데 그 현장에서 고키의 책 때문에 죽는다, 라는 쪽지와 영상이 발견돼요. 다음 날 기자들은 고키에게 몰려가고 영문을 모르던 고키는 그 소식을 듣고 "소설이란 정말 대단하군요"라는 말을 해버립니다. 그 말만 한 건 아니었지만 당연히 이 말만 나가게 되고 고키는 한동안 펜을 못 들어요. 부모조차 고키를 비난했거든요. 그런 고키가 다시 책을 쓰게 된 건 한 소녀가 신문사에 보낸 편지 때문이었어요.
"저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살아 있습니다."
- 읽는 이의 마음을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던 고키가 이 소녀의 편지를 읽고 다시 글을 쓰게 됩니다. 자신의 책 때문에 살아 있다는 독자의 말에 세상에 나갈 용기가 생겨버린 거죠.
- 쓰는 이의 마음과 쓰는 이를 열렬히 응원하는 독자의 마음이 너무 잘 느껴졌어요. 이걸 읽고 나니 작가들에게 정말 많은 빚을 졌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무사히 살아 있으니까요.
사족
- 번역이 굉장히 좋아요. 원서로 어땠을지 모르지만 뉘앙스 면에서 좀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 외국인에게도 잘 와닿게 해주셨더라고요. 정말 좋았습니다.
- 두 권짜리긴 하지만 이 책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 책이에요. 저는 전자책으로 읽었었는데 엉엉 울면서 바로 종이책을 주문했었어요. 완전 처음 같은 기분은 아니겠지만 꼭 다시 읽고 싶었거든요.
좋았던 문장 하나
"당신 눈에는 사소하게 보이겠지. 하찮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런데 내 친구들은 모두 필사적이야. 자신의 무기는 뭘까, 그걸 생각하며 소설을 쓰고 만화를 그리고 세상에 필사적으로 관여하려 해. 이것이 자신의 무기임을 깊이 생각하고 그것으로 호소하지 못한다면 정말 자기 인생은 어떻게 해야 할까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어.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꿈을 꿔 버린 이상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오늘도 책상 앞에서 씨름하고 있다고."
정말 좋아하는 책은 설명을 할 수 없다던데.. 그래서 이렇게 구구절절 말이 많아졌네요.
저는 선물도 여러 번 했을 정도로 좋아하는 책인데, 여러분에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손 번쩍 들어 인사 보내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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