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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솔지책 Jan 08. 2022

너랑 나랑 얘랑 갇히면 벌어지는 일

망망대해를 밝히는 유일한 빛, 등대에서 벌어진 이야기

이 책을 좋아할 것 같은 분

1) 미스터리/추리물을 좋아하는 분

2) 여름 바다보다 겨울 바다를 더 좋아하는 분

3) 몰입할 것이 필요한 분



에마 스토넥스 지음, 오숙은 옮김, 《등대지기들》(다산책방, 2021)

그냥 예쁜 그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면 좀.. 씁쓸할 거예요..


미스터리한 미제 사건

앞서 살짝 언급했듯 이 책은 실화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렇다고 팩션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정말 아주 짤막한 한 줄에서 이 소설이 나왔거든요. 저는 전혀 몰랐지만 작가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였는지 이 이야기에서 아주 많은 작품이 파생되었다고 해요. 구글에서 책 제목을 검색했는데 '등대지기들 실종' '캐스퍼(영화 제목)' 등이 바로 뜨더라고요.

"1900년 12월, 스코틀랜드 북서 해상의 아우터해브리디스 제도에 있는 앨런모어 섬에서 세 명의 등대원이 사라졌다."

문제는 위 세 명의 등대원이 언제, 어떻게, 왜 사라졌는지 아무도 몰랐다는 겁니다.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거든요. 결국 이들의 실종은 희대의 미제 사건으로 기록되고 맙니다.

에마 스토넥스는 이 미제 사건을 소설가로서 파헤칩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들은 왜 사라졌는지, 이것이 사고인지 사건인지 등을 소설로 써내려갔습니다. (이 책 일러두기에는 이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을 뿐,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실제 인물들의 삶과 어떤 관련도 없다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 실종된 등대지기들의 모습



깜깜한 바다, 고립된 등대

밤의 바다와 등대는 어쩌면 누구에게나 무섭고 미스터리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어요. 온갖 통신장비가 발달한 2000년대가 아닌 1900년대였다면 더더욱요.

에마 스토넥스는 그래서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을 1900년대에 두었습니다. 일단 등대가 자동화돼 있지도 않고(이건 확실하지 않네요),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한들 바로 연락을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만들어버린 거죠. 그들은 세상과 철저히 고립된 상태입니다.


단조롭고 따분하며 지루한 등대지기들의 일상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등대지기들은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냅니다. 서로 당직을 하며 교대 근무를 하고 아침에 밥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차를 마시고 설거지를 하고 뭐 그런 겁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라 더 재미가 없겠죠. 여기서 등대는 좀 더 행동 반경이 넓은 일종의 감옥 같습니다.


여러모로 이상한 그들의 실종

그러던 어느 날, 이들 셋이 한꺼번에 실종되고 맙니다. 게다가 현장은 굉장히 이상한 모습이었어요. 분명히 등대지기들은 세 명인데 1) 당시 식탁에는 두 사람분의 접시와 식기만 있었고, 2) 모든 시계가 특정 시각에 멈춰 있었습니다. 그즈음 3)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거친 파도를 헤치고 등대에 올 만한 사람도 없었어요. 본사와 가족들이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였습니다. 1) 파도가 그들을 잡아먹었다. 2) 그들 중 누군가가 나머지 둘을 죽이고 자살했다.


20년 시차를 두고 벌어지는 실종의 재구성

이 소설은 등대지기들이 실종된 1972년과 실종 20년 뒤인 1992년을 왔다 갔다 해요. 1972년은 등대지기들 세 명의 시선이 교차로, 1992년은 등대지기들을 잃은 아내, 여자친구의 이야기가 교차로 나옵니다.

이렇게 20년을 가로질러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게 된 건 한 소설가 때문입니다. 꽤 유명세를 떨친 소설가 한 명이 등대지기들의 아내들과 여자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다며 접근하거든요. 무엇이든 좋으니 실종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다고요.


한국 제목으로는 <키퍼스>인 것 같은데, 포스터가 벌써 살벌하네요.. 왜 얼굴에 피를 묻혀놨어..

그들은 무엇을 아는가 - 등대 밖 이야기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A는 인터뷰에 응하고, B는 A를 욕할 뿐이고, C는 모든 연락을 극구 거절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소설가와의 인터뷰와 독백으로 구성되는데요, 이걸 읽으면서 독자의 의문은 커져만 갑니다. A는 왜 뭔가를 숨기늩 거지? B는 그래도 한때 친했던 A를 왜 저렇게 싫어하는 거지? 결혼을 안 했다고 하지만 C는 실종된 그를 너무 사랑했던 것 같은데 왜 없었던 과거인 것처럼 행동하는 거지?

그리고 책은 하나씩 그들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이 부분부터는 스포일러라 쓰지 않겠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쌓이면서 비밀이 하나둘 풀려요. 누군가는 감추고 싶어하고 후회하는 과거까지도요.


그날, 그들에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 등대지기들의 이야기

그럼 실제 현장에 있었던 등대지기들은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1972년은 세 명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는데요. 그래도 처음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여요. 그냥 뻔하고 단조로운 일상이거든요. 셋 사이에는 서열이 존재하고 누군가 좀 퉁명스럽긴 해도 매일같이 싸우는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각 개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역시 의문이 커집니다. 일단 팀장은 자꾸만 바다를 보며 누군가를 떠올려요. 마치 연서를 쓰는 것 같달까요. 중간급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그는 팀장에게 약간 적개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가장 서열이 낮은 임시 등대지기도 '이제 여자친구에게 내 비밀을 털어놔야겠다. 걔라면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혼잣말을 하죠.


범인은 바로...

궁금해서 읽어나가던 독자들은 당연히 눈치를 챕니다. 이 실종은 사고가 아닌 사건이고 모두가 의심스럽다는 것을요. 이들 모두에겐 다 그럴만한 동기나 과거가 존재하거든요.

사실 그럼 왜 등대 밖, 육지에 있던 가족들과 지인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걸까? 싶을 수 있지만 그들 역시 이들의 실종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하나 밝혀지는 비밀과 후회스러운 과거와 도저히 놓을 수 없었던 슬픔. 그들의 실종은 이 모든 것을 버무린 결과였고, 범인은 바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ㅎㅎㅎ 구미가 당긴다면 읽어보며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보세요!



총평 및 사족

분량이 500쪽 정도 됩니다. 사실 초반이 좀 늘어진다고 생각했는데요, 사건을 풀어내기에 빌드업하는 과정이었더라고요. 그 초반을 지났기에 중후반부에서 엄청 몰입해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등장인물들 이름이 초반엔 좀 헷갈리지만 소설이 대개 그렇듯 읽다 보면 적응됩니다.

결말을 맞히긴 힘드실 겁니다. 일단 어떤 트릭을 쓴 정통 추리물이 아니기도 하고, 공간적 배경이 '바다 위 떠 있는 고립된 등대'라는 점을 잊으시면 안 돼요. 고립된 공간은 인간을 미치게 만들 수도 있죠. 생각이 많아지고 과거에 붙들려가며 감정 과잉 상태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이 책을 읽으며 '고립'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왜 많은 추리소설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처럼 사람들을 가두고 고립시키는지 더 이해가 가게 돼요. 인간은 어떤 한계 상황에 봉착했을 때에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본능엔 좀 더 충실하고, 욕망은 좀 더 간절해진달까요.

저는.. 마지막에 아주 조금 울었습니다. 정말 겨울 바다 등대 같은 소설이었어요.


http://aladin.kr/p/NPvK4



말이 너무 길었으니 얼른 끝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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