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쪽에 사는 나는,
가끔 여행이 간절해질 때면 서쪽으로 훌쩍 떠난다.
이번에도 그랬다. 여행을 떠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의 서쪽, 무릉이라는 마을에 다녀왔다.
이번 여정은 ‘하나투어제주’의 로컬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게 된 마을이다.
일정이 정해져 있는 여행이었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더 깊이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름부터 다정한 ‘무릉외갓집’.
‘외갓집’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마음이 풀어진다.
시골 할머니의 집 같은, 육지에 있는 본가 같은, 포근한 풍경을 품은 이곳에서
제주의 자연과 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두 가지 체험을 경험했다.
첫 번째는 제철 과일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귤과 블루베리, 덥고 습한 이 여름에 딱 어울리는 조합.
먼저 체험 프로그램 실장님의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재료들로 체험을 시작했다.
귤과 블루베리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너무 맛있어 보였다.
손으로 직접 과일을 으깨는 그 촉감이 생생했다.
잘게 흐트러진 과육이 휘핑크림과 아이스크림 속에 섞일 때,
주걱부터 나의 손끝까지 차갑고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익숙한 재료들이었지만, 한 입 떠 넣는 순간 입안에서 퍼지는 건 싱싱한 과일 그 자체의 단맛.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져 있었던 걸까.
무엇 하나 더하지 않아도 충분히 충만한 맛, 그 단순함이 오히려 오래 마음에 남았다.
두 번째는 무릉곶자왈에서의 사운드 워킹.
처음엔 ‘사운드 워킹’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평소의 산책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
‘걷는다’는 행위에만 집중했었다. 하지만 이 체험의 중심은 '듣는 것'이었다.
출발 전, 우리는 각자 헤드셋을 착용했다.
누군가는 신발끈을 조여 매고, 누군가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
그저 걷는 일이 이토록 집중이 필요한 일이었나 싶을 정도로,
내 숨소리, 나뭇가지 하나 스치는 소리까지 귀로 다 들어왔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새들의 종알거림, 그리고 흙을 밟는 나의 발걸음 소리.
이 모두가 하나의 배경음처럼 잔잔히 이어졌다.
잠잠히 숲 안으로 들어가면 자연이 내는 소리들이 조금씩 나를 안으로 데려간다.
그 조용한 리듬에 몸을 맡기니, 어느새 나도 숲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무릉에서의 하루는 특별한 무엇보다, 소박한 감각 하나하나에 마음이 움직였던 시간이었다.
맛을 천천히 느끼고, 소리를 깊이 듣고, 제주의 자연에 더 흠뻑 빠져보는.
아마 이 글을 누군가가 읽는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도
제주의 햇살과 숲의 냄새가
살며시 번져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