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가끔은 누군가 미리 짜둔 흐름 안에 몸을 맡기고 싶을 때가 있다.
계획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함께 걷지만 마음은 조용히 나를 향해 있는 시간.
그런 시간이 지금의 나에겐 더 필요했다.
그렇게 우연히 스친 하나투어제주의 여행 프로그램에서
‘머체왓숲길’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돌과 나무가 한껏 우거진 숲길이라는 이름,
머체왓숲길.
그 이름처럼, 숲의 입구를 들어서자
공기의 결이 달라졌다.
바람은 조금 더 차분했고,
빛은 조금 더 느리게 흘렀다.
드넓은 초원을 지나자, 길은 곧 깊은 숲 속으로 이어졌다.
그 안에는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길게 늘어서,
마치 웅장한 원시림 속 초록빛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소롱콧길’로 들어섰다.
이름도 참 예뻤다. 걸을수록 조용하고 깊어지는 길.
그 안에서 편백 향이 문득문득 폐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들을 올려다보다
문득, 걸음을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자연 앞에 서면 내가 얼마나 작고 가벼운 존재인지 새삼 느껴진다.
카메라 프레임에 다 담기지 않는 숲의 높이와 깊이, 그리고 그 아래서 조용히 숨을 쉬는 나.
머체왓숲길에서는 해먹에 누워 명상을 하는 프로그램도 운영된다고 했다.
아쉽게도 이번엔 참여하지 못했지만,
잠깐 그 장면을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다.
나무 두 그루 사이에 걸린 해먹에 조용히 기대어
부드러운 천의 촉감에 몸을 맡기고, 살랑이는 바람에 살짝 흔들리며 나뭇잎 사이로 흘러드는 햇살을 바라보는 시간. 그 순간의 공기와 그림자, 조금씩 느려지는 호흡과,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벼워지는 마음. 숲이 품은 고요 속에서, 내 안의 생각도 천천히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꼭 그 해먹 위에서 조용히 숨을 쉬어보고 싶다.
오르고 또 걷고, 약 1시간을 그렇게 숲과 함께한 뒤 다시 길을 내려왔다.
피로가 가득한 두 발을 위해 따뜻한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습도 높은 날씨에 차가운 물을 떠올렸지만,
은은한 향의 족욕제가 풀린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오늘의 피로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퍼지는 따뜻함이 숲에서 받은 감각들을 하나씩 정리해주는 것만 같았다.
머체왓에서의 하루는 천천히 걷고, 깊이 들이마시고, 가볍게 내려놓는 시간이었다.
숲의 향에 마음을 씻고, 나무의 키에 시선을 두고,
따뜻한 물에 피로를 흘려보내는 시간이 되었다.
그날의 숲 향기와 은은한 물의 온기가
이 글을 통해 당신에게도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