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브래드비어, 에놀라 홈즈 (2020)
이 영화는 에놀라 홈즈의 성장영화이다. 굳이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에놀라 홈즈>를 페미니즘 영화라는 틀에 가두고 싶지 않아서이다. 물론 페미니즘 메시지를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그 사실보다도 타이틀이 ‘에놀라 홈즈’인 이유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놀라는 영화 내내 카메라를 응시한다. 배우가 카메라를 응시하는 행위는 사실상 금기시되는 행위이다. 영화 속 세상이 '가짜'임을 관객들에게 확인시켜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놀라는 관객들의 눈을 마주하며 자신을 소개하기도 하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명료하다. 에놀라는 아직 성장 중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에놀라의 친오빠는 무려 셜록 홈즈이다. 셜록과 에놀라는 닮은 점이 많지만 ‘성장’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완성형 캐릭터인 셜록 홈즈와 미완성 캐릭터인 에놀라 홈즈. 셜록은 에놀라의 조언자 역할이 되어 그녀의 성장을 돕는다. 에놀라는 겨우 16살이고 그녀의 무기는 질문이다. 에놀라의 질문 공격에 관객들은 또 한 명의 조언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어느샌가 그녀를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에놀라가 관객들의 응원까지 받아가며 성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놀라 홈즈>의 시대적 배경은 1884년 영국이다. 여성의 참정권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던 그때, 에놀라의 엄마 유도리아 또한 그 목소리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딸에게 수놓기 대신 싸움을 가르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도리아는 알 수 없는 선물들만을 남긴 채 에놀라를 떠났다. 그제야 오래전 집을 떠났던 두 오빠, 마이크로프트와 셜록 홈즈가 집에 돌아온다. 마이크로프트는 그 시대의 '남성'이라는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인물이다. 에놀라가 여성이 갖춰야 할 미덕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신부 학교에 강제로 입학시키려고 한다.
에놀라는 유도리아의 선물에 숨겨져 있는 단서들을 조합해 탈출에 성공, 곧장 런던으로 떠난다. ‘엄마 찾기’라는 인생 첫 번째 사건을 맡게 된 것이다. 런던에 도착한 에놀라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 변장을 한다. 완전히 숙녀 같은 모습으로. 즉 필요에 의해 자의로 코르셋을 입은 것이다. 이 장면에서 <에놀라 홈즈>가 다른 페미니즘 영화들과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셜록은 에놀라의 성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에놀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튜크스베리 자작은 런던행 기차에서 목숨을 구해준 인연으로 여성 참정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선거법 개정에 힘을 보탰다. 이러한 서사는 성별의 구분을 넘어, 함께 ‘차별’이라는 악에 맞서는 인간들의 연대를 그리고 있다. 심지어 튜크스베리 자작은 총을 맞지 않기 위해 스스로 코르셋을 입기도 한다. 이 장면 역시 여성들의 연대에서 더 나아가 ‘인간들의 연대’라는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다.
결국 에놀라 홈즈가 성장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모든 차별과 억압에 맞서기 위해서이다. 유도리아는 집을 떠나기 전 에놀라에게 말한다.
"너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어. 네가 정하는 길과 타인이 정해주는 길. 그리고 우리의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있어."
타인이 정해주는 길은 곧 차별일 것이고, 내가 정하는 길은 차별에 맞서 싸울 우리에게 달려있다. 여기서 ‘우리’는 여자뿐만 아니라 인간 모두를 포함하는 대명사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에놀라 홈즈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에 맞서기 위해 어디선가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그 성장은 반드시 필요하고 응원받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