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유토피아의 개척자

NMIXX, O.O (2022)

by 달여름


"O.O" Music Video

(*먼저 뮤직비디오를 감상해보세요.)



닻이 내려진 미지의 땅. 뿌연 안개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함선 앞, 나팔고둥을 부는 듯한 사운드와 함께 그들의 정체가 드러난다. 여기서 잠시. 그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듣기 전, 데뷔 직전에 공개했던 New frontier : Declearation 영상 먼저 보고 시작하기로 하자. 추상적인 이미지와 문장들의 나열이지만 엔믹스의 정체성을 관통하는 거대한 줄기를 이야기하고 있기에 중요한 클립이다.


어느 날 우리는 환상을 보았다. 그곳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게 이루어졌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달콤한 도넛 향기가 났고, 하늘에는 여러 가지 색의 해파리가 날아다녔다.
(중략)
그러나 눈을 감는 순간, 우리는 현실을 본다. 이곳에는 행복과 동시에 고통이 있고, 희망과 함께 실망이 있다. 소외된 이들과 온몸으로 찬 바람을 맞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눈을 뜨려고 한다. 우리가 꿈꾸는 바다 같은 세상으로 함께 나아가려 한다. 누군가는 부질없다 비난하고 어설픈 패기라며 손가락질해도. 우리만의 작은 발자국을 위해 망설임 없이 갑판에 발을 딛는다.
- New frontier : Declearation 中


우리는 이 선언(Declearation)을 통해 엔믹스의 이상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엔믹스 데뷔 싱글 <AD MARE>의 타이틀곡 'O.O'를 처음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장르야? 왜 1절이랑 2절이 다른 곡 같지? 그래서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건데?

모든 반응들에 이해하고 공감한다. 나 또한 그랬다. 걸그룹 명가 JYP의 신인 걸그룹 데뷔 소식에 남몰래 설레고 있었는데 음악이, 안무가, 의상이 이상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다시 뮤직비디오 인트로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닻, 함선, 그리고 엔믹스. 그렇다. 그들은 그 땅의 새로운 개척자(New frontier)이다. 하지만 아직 현실에서 벗어날 만큼의 새로운 세상을 찾아낸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물리적인 공간만큼이나 중요하게 작용하는 세계가 있다. 생각하고 인지하고 상상하는, 정신적인 세계.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뎠다면 그다음 단계는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소외되고 찬 바람을 맞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새로운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되므로.



릴리가 도미노를 넘어뜨리자 규진은 전력 질주해 그 도미노를 뚫고 나간다. 릴리에게는 작은 도미노에 불과했지만 규진에게는 아주 높은 벽이 된 상황. 같은 현실이라도 같은 세상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즐겁고 누군가에게는 버겁다. 그저 눈을 감고 버티고 있던 현실이 규진에 의해 잠시 off 된다.



규진이 뚫고 나간 벽은 환상(Vision), 즉 미지의 세계로 가는 문이었다. 누군가 벽을 뚫고 나가는 순간 barrier는 gate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꿈꿨던 바다 같은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물고기와 해파리가 하늘을 날고 공기 내음은 도넛 향으로 가득하며 발 딛는 곳마다 꽃이 피어나는 세상. 하늘을 나는 해파리도, 운동화로 리폼한 드레스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건 갑자기 아예 다른 느낌으로 바뀌어버린 음악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은 이후로는 적어도 그 이유가 타당하다는 것만은 인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현실에서 환상으로. 뻔한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로.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 유토피아로 엔믹스의 음악을 통해 입장하려면, 이 정도의 변화구는 던져주어야 타당한 일 아닐까? 뻔하게 양산되는 음악으로는 콘셉트로는, 이를 다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엔믹스는 데뷔곡에서부터 'MIXX POP'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내세웠다. 케이팝 고인물이라면 숨듣명 리스트에 한 번쯤 넣어뒀을 소녀시대의 'I GOT A BOY'가 대표적인 믹스 팝. 믹스 팝은 두 가지 장르를 한 곡에 혼합한 장르다. 오피셜에 따르면 트랩과 베일리 펑크, 틴에이지 팝 락 장르를 넘나드는 곡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현실에서의 엔믹스는 베일리 펑크로 표현되고 환상에서의 엔믹스는 틴에이지 팝 락으로 표현된다. (앨범 상세 설명란에는 FIELD와 MXTP로 설명되어 있다)

새로운 장르 믹스 팝에 대한 대중들의 얼떨떨한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사실상 엔믹스는 '이상함'을 무기로 내세운 셈이고, 새로운 것에 대해 거부감을 표하는 시선들에 정면 돌파했다. 음악뿐만 아니라 의상 또한 그렇다. 레이스로 치렁치렁한 드레스의 이너는 트레이닝복이고, 벨트는 운동화다. 그러나 엔믹스의 이상함은 스토리텔링에 의해 특별함을 갖는다. 2절에 이런 가사가 있다.


현실 같은 dream은 이제 지겹지 않니?
잠든 너를 Tap-Tap
깨워 Knock-Knock


잠들어 있을 때만 꿈꾸는 우리들의 눈을 뜨게 만들고, 눈을 뜬 이후에도 꿈꾸게 만들고자 하는. 바로 이것이 엔믹스 음악의 궁극적인 메시지일 것이다.

"우리 음악도 그렇고 우린 이상한 애들이야. 근데 네가 사는 그 세상, 좀 지루하지 않아? 잠잘 때만 꿈꾸는 거 좀 지겹지 않냐고."



쭉 환상 속에 머무를 것만 같던 엔믹스의 세계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이 지점에서 장르도 틴에이지 팝 락에서 베일리 펑크로 돌아오고, 자유를 만끽하던 그들의 표정이 비장해진다. 또한 하늘을 날던 물고기와 해파리는 왜인지 브로치로 변해버렸고, 함선이 아닌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춤추는 엔믹스를 비춘다.

엔믹스의 세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다음 앨범에서 알 수 있을 테지만, 말랑말랑 알록달록 젤리 같던 해파리가 <AD MARE> 앨범 커버에서는 정체불명의 로봇 해파리로 바뀌어 있는 것만 봐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을 것 같다.


하지만 엔믹스는 이미 알고 있다. 기꺼이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 세계에 가야 하는 이유는,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이란 걸. 엔믹스의 이상함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험난할지언정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소외 없는 그 바다로, 그 유토피아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PICK N MIX
: 여러 가지를 뒤섞은 것
혹은 취사 선택할 수 있는 것


엔믹스의 ‘N’은 미지수를 뜻하고 어떤 것들의 조합이 시너지를 일으켜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뮤직비디오 속 도넛 가게의 이름이 'PICK N MIXX'인 것을 보면 양산화되는 음악들 속 엔믹스가 새롭게 개척해나가고자 하는 음악적 정체성이 뚜렷하게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이상함을 응원하고 싶다. 다양함을 향한 도전이 이상함만으로 치부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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