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하찮은 소신발언의 시작

by 달여름

우리 엄마 아빠가 들으면 기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막 이십 대 중반. 행복을 향해 마구 달려가야 하는 시점이니까요.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행복하려고 하면 할수록 자꾸 불행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요. 사실 행복에는 불행이 불가피하게 따르기 마련이잖아요. 이를 테면 출렁이는 뱃살과 손절 좀 해보겠다 마음 먹으면 사랑하는 엽떡과도 손절해야 하는 최대의 불행이 따르는 것처럼요.


아무튼 행복과 불행이 평행선에 있다는 건 누가 말해준 적은 없지만 잘 알고 있었어요. 어떤 행복을 위해서는 또 다른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것두요. 또 다른 행복의 포기는 곧 불행이니까요.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어요. 행복은 온전히 나로 인해 존재한다는 거예요. 나의 필요에 의해 찾아지고, 나의 선택에 의해 실현될 수 있는 게 행복이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행복이 나보다 앞서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행복의 주체는 누가 뭐래도 나여야 하는데, 자꾸 행복이 제게 선택권을 주더라구요. 꼭 무슨 게임 퀘스트처럼요.


[행복 A를 선택하면 앞날이 창창해집니다. 행복 B를 포기하고 당신의 미래에 투자하시겠습니까?]

-네.


[행복 A를 위해 행복 B를 포기하셨네요. 축하합니다! 새로운 불행 C를 획득하셨습니다.]

- 그런 말은 없었잖아 이 사기꾼아!!!


불행 C를 획득하면 행복 A는 보장될까요? 그럴 수 있지만 그럴 수 없기도 해요. 한낱 인간이 알 수 있는 건 가짓수가 몇 개 없다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잖아요. 심지어는 저만치 떨어진 행복을 한 번이라도 손에 쥐어보려 제대로 달려보기도 전에 불행하고는 해요. 내 것이 아닌 행복을 부러워하며 내가 가진 행복을 잊기도 하구요. 이런 생각들로 잠 못 이루는 밤이 하루 이틀 늘어가죠. 동이 틀 때서야 겨우 잠들었다 눈 뜬 하루는 또 무기력해요. 내가 부르짖은 건 분명 행복이었는데, 불행이 자꾸만 굴러들어 오는 거예요. 나는 또 작아지고 작아지고 또 짓눌리고 짓눌려요.


남들보다 생각이 많다는 핑계로 불면을 정당화했던 밤들이 있었어요. 물론 지금도 간간히 그런 밤을 보내구요. 그런데 불면의 원인은 명확히 ‘나’ 자체였어요. 애초에 기본값이 ‘나는 행복한 사람’으로 정해져 있으니 자꾸 오류가 났겠죠. 아 행복해야 되는데, 나는 불행하면 안 되는데. 나는 행복한 사람인데… 하면서요. 기본값을 벗어나기 싫어서 애만 쓰다가 정작 행복하질 못했던 거예요.


저는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내가 딱히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요. 그 순간, 딱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내가 가진 행복과 불행이 모두 리셋된 느낌. 새로 채워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느낌. 저는 이제 행복하고 싶기보다는 행복해하는 나를 찾고 싶어졌어요. 행복하고 싶지 않다면 당연히 거짓말이겠죠. 그렇게 살 수 있는 인간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행복하려고 행복하고 싶지는 않아요. 행복이라는 단어에만 갇혀 있으니 몇 배는 더 불행하더라구요.


행복은 애쓰는 자가 얻는 게 아니라, 만족할 줄 아는 자가 얻는다고 믿어요. 그렇다고 노력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게 아니에요. 남을 뒤좇다가 나를 잃어버리기 전에 내가 가진 것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저, 그냥, 살다 보니, 행복하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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