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예, <라스트 젤리 샷> (2023)
genre. SF
author. 청예
울다가도 웃고. 화내다가도 용서하고. 시기하다가도 선망하는.
모든 상황의 시작점이 감정이었다면, 모든 상황의 산물도 찌꺼기도 모두 감정인 우리는 인간이다.
나를 일어서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감정이 있는가 하면,
남을 무릎 꿇게 하고 암흑 속에 가두는 감정도 있다.
즉 우리는 완전한 ‘선’ 혹은 완벽한 ‘삶’ 같은 것은 실현할 수 없다. 그래서 유일하고 특별하다.
감정의 주체인 우리는 그 누구의 개입도 없이 오로지 우리의 선택들로 불완전한 삶을 영위한다.
단 하나의 결함도 없이 만들어진 로봇은 완전하고 완벽할 순 있겠으나, 유일하고 특별할 순 없다.
아, 착각이었다. 소설을 읽고 뒤통수를 쎄게 얻어맞았다.
감정이라는 발화점 아래 인간만이 누릴 수 있었던 세 가지. 예술, 종교, 가정.
<라스트 젤리 샷>의 세 인봇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사회화 실험을 위해
각각 작곡가, 무속인, 3인 가족에게 파견된다.
그들은 완벽을 위해 효율을 추구한다. 그 방법이 아무리 잔인하고 끔찍한 것이어도 괜찮다.
이게 다 인간의 효율적인 삶을 위한 일이니. 세 인봇의 만행은 모두 ‘선의’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무섭다.
잘못된 선택이 잘못된 방법으로 이어지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이른다.
끔찍하게도 인간을 닮았다. 진정 호러물이 아닐 수 없다.
기계적 오류가 나 흉기를 휘두르는 것보다도 무서운 건 인간처럼 실수와 착각을 범하는 것이다.
데우스는 꿈의 실현, 엑스는 믿음의 힘, 마키나는 조건 없는 사랑.
과 같은 결말을 상상한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흐물텅해서 금방 이에 찢겨버리는 젤리가 꼭 우리들의 위선 같다는 생각.
히어로물 영화에서 지독히도 마을 사람을 괴롭히던 악당을 영웅이 물리치는 엔딩이 ‘라스트 젤리’라면,
이 소설에서는 인간인 우리들의 부끄러운 속내가 다 들켜버리는 엔딩이 ‘라스트 젤리’다.
사람들은 열정과 의지에서 발현되는 기적을 믿지만,
현실은 지나칠 정도로 이성적일 때가 있었다. 가끔보다 더 자주.
그래서 꿈은 사람을 자주 울렸다.
갈수록 똑똑해지는 타자들은 예리한 첨탑 위에 설 줄은 알아도
사람의 둥그런 마음을 보듬을 줄은 몰랐다.
그들이 키워낸 기술 또한 서글픔을 모르는 채로 자라난 아이여서
상처를 준 후에도 찬란하게 웃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