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꼬집의 일상

지극히 평범한 하루들의 아우성

by 달여름

생각해 보면 그렇다. 하루는 24시간. 일주일은 7일. 일곱 날들 중 특별한 날은 슬프게도 아예 없거나 하루 정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슬플 자격이 있나? 하루에게 특별함을 부여하는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이다. 어찌 보면 내가 하루평가위원회의 최종결정권자인 셈. '특별한 하루'라는 A등급 평가를 받으려면 그 기준이 꽤나 까다롭다.



1. 평소에 하지 않았던 일을 했는가?

2. 스토리에 올릴 만한 사진을 건졌는가?

3. 1일 감탄사 총량을 채웠는가?

‘맛있다’ 최소 3번 / ‘재밌다’ 최소 4번 / ‘우와’ 혹은 ‘대박’ 최소 5번 / ‘좋다’ 최소 3번

4. 잠들기 전 갤러리에 들어가 보고 싶은가?

5. 일기 혹은 블로그를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가?



5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날은 1년에 과연 몇 번일까. 이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하루들은 할 말이 많다.


낮에는 동기가 짜증 났어도 밤에는 귀여운 고양이를 만났잖아! 하루 종일 집에 있었지만 오랜만에 맘에 드는 드라마도 찾고 블루베리 곁들인 요거트도 맛있었잖아! 하던 일 관두고 새로운 일 해보겠다 결심한 그날은 또 어떻고. 엄마랑 술 먹고 잔뜩 취해서 울다가 웃던 그날은! 맞다, 갑자기 엽떡 땡겨서 충동적으로 야식 조진 날도 있었잖아. 그때 엄청 행복해했으면서! 이렇게 빡빡하게 굴 줄 알았으면 막 살았지 우리도!


하루들의 아우성이 들려온 건 몇 달 전, 일본 여행 블로그를 막 다 썼을 때였다. 무려 4개의 게시글을 올렸다. 이거 이거 일본 정도는 다녀와야 뭘 쓰네. 우리는 그냥 소모품인 줄 아는 거야. 고마움을 모르는 거지.


솔직히 좀 억울하기도 했다. 아니 원래 특별한 날들만 어디 올리고 남기는 거 아니냐고.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 나의 뻔뻔함에 하루들은 포기한 듯 입을 닫았다. 아우성이 멈추고 정적만이 남았던 어느 새벽. 나는 아무 의미 없이 찍었다 생각했던, 사실 찍은 지도 몰랐던 사진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런 걸 언제 찍었더라. 기억이 선명한 하루가 있는가 하면 흐릿한 하루도 있었다. 분명한 건 웬만하면 모든 날의 사진이 있었다는 것. 뭘 굳이 이런 것까지 찍어뒀나 할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니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하루도 궁금해졌다. 길게는 반나절, 짧게는 겨우 몇 분. 소금 한 꼬집도 안 되는 조막디한 순간들이. 큰 냄비를 가득 채운 먹음직한 요리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 나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이.


하루평가위원회의 최고결정권자로서, 이 위원회의 존속은 내게 달렸다. 그렇다면 다수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지극히 평범한 하루들이 더 이상 억울한 일이 없게끔, 한 꼬집의 일상이라도 남기기로 했다.




집 주차장 트럭 밑에서 나를 잔뜩 경계하는 바둑 고양이를 봄.


그냥 이런,




통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보다 테이블에 비치던 풀잎들이 더 맘에 들었음.


아니면 이런,




문득 하늘을 봤는데 비눗방울 단 한 방울만 살아서 둥둥 떠다니는 걸 포착함. 럭키!


또 이런,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지만 잊어버리기는 쉬운,

한 꼬집의 일상들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