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인프제의 한탄

아ㅏㅏ 생각 좀 그만하고 싶다ㅏㅏ

by 달여름


밤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윌버의 배는 비어 있었지만 머리는 가득 차 있었다.
뱃속은 비어 있는데 머릿속이 가득할 때에는 잠들기가 힘든 법이다.

- 엘인 브룩스 화이트, <샬롯의 거미줄>에서


뜬금없지만 나는 생각이 드릅게 많다. 생각의 범위가 하도 넓어서 카테고리화 하기 어려울 정도로 갖가지 생각을 하며 산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생각은 생각일 뿐, 정리해야겠다는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 흔한 일기도 잘 쓰지 않았고 생각이 끝나면 어디론가 흩날려버리곤 했다. 생각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뇌가 터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엉뚱 끔찍한 상상까지 하며, 또 다른 생각을 위해 최대한 빨리 증발시켜버렸다.


그렇게 지금이 되었고 남은 게 별로 없었다. 내가 열네 살에 했던 생각, 열여덟에 했던 생각, 스물하나에 했던 생각. 기록이 없으니 모든 생각들은 흐물흐물한 젤리가 되어 이에 씹히는 대로 찢기었다.

운이 좋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고 이에 달라붙은 것들만 겨우 남았다. 그런 것들은 완전한 형체를 띠고 있지 않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란 꽤 부끄러운 일이었다. 대개 이에 낀 젤리들은 화장실에서 몰래 빼기 마련이니까.


그런 게 있었는데 말이야. 그게 그러니까, 어땠더라? 나도 잘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 별 거 아니었나 봐.


그때 당시를 되돌아보면 별 거 아니었던 생각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아도, 뇌가 머리 밖으로 빠져나오더라도 내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내가 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할 때 흥미로워하는지, 무슨 생각을 제일 오랜 시간 하는지. 어느 정도는 카테고리화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생각하네 정확히는 그런 의지가 들었다. 생각이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쓴 것 같아서 바꾼 건 절대 아님


조금은 날것의 글자를 휘갈겨도 여기는 괜찮겠다 싶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공간이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딱 한 곳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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