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공드리, Mood Indigo (2013)
영화 <무드 인디고>의 원작은 보리스 비앙의 ‘The Form of Days’, 세월의 거품이다. 세월이란 생에서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다. 우리 모두는 살기 위해 태어났지만, 결국에는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걷기에 ‘생은 죽음을 위한 것인가’하는 의문이 종종 들기도 한다.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주인공 콜랭은 누구보다 생에 충실한 인물이다. 콜랭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그렇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굉장히 찬란해서 내내 삶에 대한 감탄사를 내뱉게 만든다. <무드 인디고>에서는 청각, 미각, 촉각 등 눈으로 볼 수 없는 감각들이 시각적으로 표현된다. 아침 햇살마저 창문을 뚫고 들어온다. 아침 햇살로 추측되는 하얀 막대기들이 정말 ‘창문을 뚫고’ 들어온다.
또한 콜랭은 피아노의 음과 연주의 분위기에 따라 칵테일이 만들어지는 ‘칵테일 피아노’를 발명하는데, 이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총동원한 발명품이다. 이 칵테일 피아노는 콜랭의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콜랭이 듣고, 만지고,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그 피아노에 있다.
콜랭은 일도 하지 않는다. 평생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양의 돈이 쌓인 금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콜랭에게 운명 한 덩어리가 굴러 들어온다. 바로 클로에. 콜랭은 클로에를 만나 행복의 절정에 다다른 삶에 빠져들고, 금고에 있던 돈을 모조리 털어 성대한 결혼식도 치른다. 궁전에서 왕자와 공주가 결혼하듯, 아주 성대하게 말이다. 그렇게 해피엔딩일까?
모두 알다시피 그럴 리는 없다. 신혼여행 첫날밤, 클로에의 폐에 차가운 수련이 들어앉음으로 인해 클로에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한다. 차가운 수련이, 하필이면, 클로에의 폐에 들어앉은 것 역시 운명일까? 아니다, 그건 현실이었다. 콜랭의 삶에 나타난 클로에의 존재도, 차가운 수련도 그것은 사실 모두 현실이었다.
행복한 삶에 모두 쏟아부었던 금고 속 돈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 결국 콜랭은 일하기 시작한다. 콜랭이 일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찬란한 컬러감을 지닌 화면에서 은은한 파스텔, 그리고 흑백으로까지의 색의 변화를 거친다. 그렇다. 콜랭의 ‘진짜 삶’이 시작된 것이다. 클로에가 아프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확히는 금고에 돈이 쌓여있을 때만 하더라도 콜랭에게 친절했던 모두가 어찌 된 일인지 삭막하기만 하다.
콜랭은 휘지 않는 양성자 총을 위해 인간의 체온을 필요로 하는 무기 제조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비장, 간, 분비기관을 24시간 동안 흙에 대고 있어야 한다. 인간의 모든 감각을 누릴 수 있는 ‘칵테일 피아노’를 즐기던 콜랭이 인간의 감각을 철저히 억제당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열악하긴 해도 보수가 좋지 않냐는 콜랭의 말에 직원은 말한다.
“몸이 망가지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에요.”
아픈 클레어를 치료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즉 돈 때문에 ‘감각’을 져버린 콜랭. 찬란했던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황홀함을 만끽하기도 전, 당연히도 다시 돌아온 현실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콜랭은 성대한 결혼식을 부탁했던 목사에게 클레어의 장례식도 부탁한다. 하지만 콜랭이 가진 돈은 고작 20 더블종. 성대한 장례식을 위해서는 2천 더블종이 필요하다는 목사. 그는 20 더블종뿐이라는 콜랭에게 ‘가난뱅이 장례식’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클로에가 죽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
“솔직히 말하면 당신이 가난하다는 말이 더 큰 문제예요. 형편없는 장례식이 될 거예요.”
죽음까지도 값이 매겨진 세상. 그렇게 클로에의 장례식은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 정말 형편없는 장례식이 되고 만다. 집 창문 밖으로 관을 던지고, 흙 속으로 내동댕이 치고, 이 정도면 암매장 아니야? 싶을 정도의 장례식.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의 초반부, 중반부, 후반부는 ‘감각의 유무’에 따라 색채와 분위기가 달라진다. 콜랭의 삶은, 콜랭의 감각은 돈에 잠식된다. 돈이 중요 키워드가 아니었던 콜랭의 삶에서는, 죽음으로 향하는 삶이라 해도 상관없을 만큼 풍족했고 행복했다. 그러나 돈이 개입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콜랭이 최소한으로 누릴 수 있는 감각들마저 짓이겨진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색들을, 얼마나 많은 소리들을, 또 얼마나 많은 느낌들을 우리 안에 묻어놓고 살아가는 걸까. 미쳤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의 ‘순수함’이 가득했던 콜랭의 삶이 흑백으로 물들어 가는 과정은 꽤 오랫동안 아프게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