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니, <Odd> (2015)
어느 날. 감각이 없는 외계인이 감각의 행성 ‘지구’를 침공했다. 그들은 감각 대신 일종의 레이더를 통해 자극을 알아차렸고, 그것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들 중에도 당연히 엘리트는 있었다. 레이더 수석 연구원 W. 그는 레이더를 연구하며 지구를 알게 되었고, 유채색으로 덕지덕지 뒤덮여 유독 눈에 띠었던 행성을 멍하니 보고 있는 걸 좋아했다. W는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이 자체적으로 감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그들을 혐오하면서도 선망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쓸모없게 느껴지는 본인의 몸뚱이에 대한 회의감도 느꼈다. 그래서 W는 지구를 침공하기로 결심했다. 저 행성에, 제일 감각을 잘 느끼는, 지구인 한 명을 납치해 해부라도 해볼 심산이었다.
우선, 지구인들이 어떤 방법으로 감각을 느끼는지 알아야 했다. 레이더는 외계인의 몸과 별개여서, 레이더가 ‘신호’ 하면 몸이 ‘해석’ 하는 수준이었다. 감각을 느끼는 게 아니라 감각을 이해해야 했다. 레이더를 통해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던 W는 두 눈 대신 빨간 불을 반짝였다.
“저 지구인이다.”
그게 바로 나다. 감각에 죽고 감각에 사는, 감각 중독자. W는 나에게 빨간 불을 반짝이며 꽥꽥거렸다.
“지구인들만 느낄 수 있다는 감각이 뭔지 당장 불어!”
“…예?”
“너흰 상상만으로도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들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푸른 바다를 떠올리면 파도 소리가 들리고, 달콤한 것을 갈망하면 도넛 냄새가 나고, 우거진 숲을 보면 바람이 불어온다던데. 지구인은 모두 마법사인가? 아니면 단체로 정신착란증을 가졌나? ”
W는 지구인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한 것 같았다. 이 해괴한 몰골의 생명체가 그걸 다 어떻게 알았지 싶어 절로 소름이 끼쳤다. 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의외로 고민은 빠르게 종결되었다. 식탁 의자를 가져와 밟고 올라섰다. 그리고 서랍장에서 네모난 것을 꺼내 외계인에게 냅다 들이밀었다.
“외계인 양반,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우니… 이 앨범 하나만 들어보슈.”
어쩐지 넌 좀 뭔가 달랐어
내가 넌, 이럴 줄 알았어
남들과는 다른 좀 특별한 뭔가를
분명 넌, 갖고 있을 줄 알았어
샤이니는 좀 특이했다. 어쩐지 좀 뭔가 달랐다. 늘 새롭지만 아무튼 샤이니다. 그게 샤이니의 특이함이고 특별함이다. odd eye는 ‘이상함’으로 여겨질 수 있는 ‘특이함’에 대해 무한한 자신감을 내비치는 곡이다. 이상하게 보든 특이하게 보든, 결국 모든 시선은 오드아이의 차지가 되고 만다. 샤이니라는 아티스트가 그러하듯.
넌 꽃이야 잎사귀 적셔온 빗물
널 마시고 느끼고 뭘 해도 목말라
데뷔곡 ‘누난 너무 예뻐’의 다음 이야기를 담은 곡. 다소 오글거릴 수 있는 표현들이 샤이니의 목소리를 거치니 설득력을 가지는 신기한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가끔은 비유적 표현보다 직설적 표현이 더 낭만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 곡이 그렇다. 샤이니만이 가지고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소년미가 그득 담겨있다.
저 하늘을 곱게 접는 이 바다를
병에 담는 시간도, 편히 걷는 꿈들을 이뤄 난
<Odd>의 타이틀곡. 딥 하우스 장르에 종현의 감각적인 가사가 얹어졌다. 감각과 감각이 연결되어 한 사람에게 닿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듣고 있으면 푸르른 물결이 일렁이는 듯, 시원하고 축축한 향이 퍼지는 듯,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듯 ‘랜선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외계인에게 <Odd> 앨범을 건넨 이유 그 자체인 곡.
View (*뮤직비디오를 감상해보세요)
다음 스케줄을 위해 이동하던 스타 샤이니는 이름 모를 소녀들에게 새로운 세상인지, 아니면 잠시 잊었던 세상인지 알 수 없는 곳에 납치당한다. 소녀들은 마치 샤이니를 유혹하듯 자신들의 공간으로 이끈다. 무려 '납치를 당한' 샤이니는 무거운 의상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티셔츠 한 장만 걸친 채 그 누구도 모를 일탈을 마음껏 즐긴다. 아이러니하게도 납치를, 일탈을 즐긴다.
어쩌면 일탈이 아니라 그들 본연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자유롭게 느끼며 살아가는 삶. 하지만 ‘스타’라는 두 번째 이름을 달고 자유롭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어딜 가도 그들의 흔적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그들은 클럽 대신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창고에서 파티를 즐기고 춤을 춘다. 그리고 울리는 사이렌. 그 소리를 듣는 태민의 뒷모습은 어딘가 쓸쓸하다.
아마도 ‘잊었던 감각’을 상징하는 소녀들이 이끈 세상은 잊어야만 했던 세상이었을 것이다. 스타로서의 삶을 위해 등져야 했던 세상. 감각을 느끼게 하는 모든 세포가 깨어나고 내가 나일 수 있는 세상. 이 지점에서 아티스트이자 아이돌인 샤이니의 고민이 여실히 드러난다. (아이돌이) 꾸밈없는 감정을 표현해도 되는가? 이런 장르의 음악을 해도 되는가? 늘 가득 채워져 있는 우리를, 음악과 무대를, 조금은 비워내도 되는가?
그들의 고민은 <Odd>라는 앨범에 고스란히 담겼고 샤이니의 가장 날 것이 담겨 있는, 감각의 세포가 깨어난 그들을 온전히 담아낸 앨범으로 탄생했다.
이해할 수 없는 다른 말들 속에서
우리 둘뿐인 세상, 잠시 귀를 대봐요
<Odd> 앨범에는 예전 곡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곡들이 많다. 이 곡도 그중 하나로 다섯 번째 미니 앨범 <Everybody>에 수록되어있는 ‘빗 속 뉴욕’의 또 다른 버전이다. 뉴욕이라는 낯선 도시에 어쩌다 머물게 된 방랑자의 사랑을 노래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곡.
무한 속에 흔들리는 시계추를 멈춰
얼어붙은 심장과 손끝에 걸린 Trigger
샤이니의 드라마틱한 보컬을 들을 수 있는 곡. 샤이니 앨범의 수록곡 중에서는, 특정 장르 영화의 삽입곡으로 쓰여도 손색없는 곡들이 많다. 곡이 가진 분위기를 최대로 이끌어내는 변화무쌍한 보컬 덕분이 아닐까. Trigger 한 곡 들으면 킬러 영화 한 편 뚝딱이다.
마지막 날, 너와 나의 온도가 달랐듯
마치 우는 아이를 타이르듯 날 떠미는 이 길의 끝
틀린 리듬대로 변주되어 가 버린 이 길 끝에
너란 꽃이 피길 기도해
첫 번째 정규 앨범 <The SHINee World>의 수록곡 ‘사랑의 길’과 평행선에 있는 곡이다. 누군가는 이미 다 걸어가 지나친 길을 끝없이 계속 걷고 있는 나. 어쩌면 아직도 사랑의 길에 머무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계속 걷다 보면 이별의 길에도 끝은 있을 테고, 언젠가 또 사랑의 길이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곡이 그리 슬프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너의 노래가 되어 줄게
편히 쉴 수 있는 쉼이 돼 줄게
너에게 한걸음 다가갈 수만 있다면
샤이니표 발라드.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히 읊조리는 목소리들이 참 따스히도 마음을 감싼다. 가슴 벅찰 만큼 감동적인 것보다, 일상 속 잔잔히 스며드는 것들이 더 위로가 되는 순간이 많다. 이 노래가 그렇다.
넌 내 어떤 빛깔을 믿어
난 너의 손등 위의 그 푸른빛을 믿어
난 네 새하얀 피부 아래, 그 푸르른 빛줄기 아래
흐르는 생명을 믿어
가끔 내가 숨을 어떻게 쉬었더라? 하는 다소 멍청한 생각과 동시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곤 한다. 이 곡을 듣는 순간만큼은 멍청한 생각 없이도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도입부에서 귀를 쾅쾅 울리는 드럼 사운드가 내가 생명체임을 일깨워주는 것만 같다. 늘 조용히 뛰고 있는 내 심장처럼.
평소와 같은 햇살 똑같은 잔디 위
지루해 누웠는데 그녀 저기 걸어가
어디 가나요 정말 난 시간 많은데
강아지 좋아하니? 이리 와 놀자!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귀여운 곡. 전지적 강아지 시점인 이 곡은 뮤지컬 ‘캣츠’의 강아지 버전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 곡 역시 드라마틱한 보컬이 특징인데, 뮤지컬적인 곡 구성과 만나 파트 하나가 끝날 때마다 머릿속에서 막(act)이 넘어간다.
잠깐 눈을 뜨면 또다른 아침, 어제라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하루
우주 같은 세상 속을 헤매다, 그러다 너의 눈을 본 거야
<Odd> 앨범의 최애곡. 이 곡을 재생하면 꼭 누군가 틀어준 것 같은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분명 재생 버튼을 누른 건 나인데, 다른 곳에서 다른 이가 틀어주는 음악을 듣는 느낌. 그 지점이 굉장히 레트로 하게 느껴진다. 2월 2일만이 반복되는 인생 속,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변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루프물 영화 <사랑의 블랙홀>이 떠오르는 곡이기도 하다.
길었던 이야기만큼 허무했던 우리의 안녕
익숙함이 준 당연함 속에 우리 사랑은 야윈 달처럼 희미해져
시를 읊조리듯 잔잔한 울림을 줬던 ‘너의 노래가 되어’
하지만 재연, ‘앙코르’에서는 감정을 일말의 미련도 없이 감정을 터뜨린다. 콘서트 내내 완벽한 공연을 위해 감정을 억누르다 앵콜에서 왈칵 울음을 토해내는 그들처럼.
“물감이 번져 가는 듯 하루씩 또렷해져.”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재연은, 하얀 종이에 떨어트린 물감이 점점 더 큰 범위로 번져 가듯 감정이 증폭된다. 동시에 우리의 마음으로도 자연스럽게 번지고 만다.
<Odd>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재연’은 이 앨범을 만들기 전의 그들에게 전하는 노래 같기도 했다. 샤이니는 <Odd>를 통해 샤이니라는 아티스트의 색을 견고히 했고,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기도 하고 소중한 누군가와 멀어지기도 하고 익숙함에 닳아버린 자신을 마주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나를 찾도록 도와준 그 시간들 덕분에 다시 막이 오르는 무대처럼 샤이니의 빛나던 순간은 또 재연되고 재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