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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Apr 20. 2023

새우만두

담백한 마음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날카로운 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주문한 닭강정이 포장되어 나오기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싸움이 일어난 것인가 두리번거리자 손님과 사장의 대치가 눈에 들어온다. 아니 대치라고 하기에는 사장의 일방적인 외침이 울리고 있었다. 메뉴가 나오는 데에 얼마나 걸릴지 묻는 질문에, 주문을 정해 주방에 넣어 봐야 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충분히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인 것 같은데 무엇이 그를 그렇게 화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올 수 있는 집이 또 이렇게 사라지는구나 아쉬운 맘이 들었다.


맛집은 꼭 '맛'만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물론 목구멍으로 넘길 수도 없는 처참한 상태일 때에는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 외적인 것들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적당한 맛이라면 세련된 인테리어나 뷰가 맛집을 만들기도 한다. 햇살이 잘 드는 창가는 머물기 좋아 손님을 부르고, 따뜻한 분위기는 마음을 안아주는 것 같아 자주 찾게 된다. 반면 훌륭한 맛을 외면하게 하는 것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청결함이다. 기름을 많이 쓰는 집이라면 영업 종료를 향해 가는 시간 바닥의 끈적임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테이블이 끈적끈적하거나, 식기가 지저분한 곳은 아무리 맛이 있어도 맛집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불친절한 곳도 마찬가지이다. 친절이 필수는 아니겠지만 손님이 먼저 건네는 인사에도 대꾸 한번 없거나, 종업원에게 보란 듯이 면박을 주는 곳은 내가 당하지 않더라도 보는 것만으로 불편하여 두번 다시 찾지 않는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슬그머니 편안한 웃음이 나오는 곳이 내게는 맛집이다.


밤늦게까지 커다란 찜기를 내놓아 뚜껑을 열 때마다 시야를 가리는 뿌연 김이 도로로 가득히 뿜어대는 집이 있다. 바로 만두를 파는 곳이다. 과하게 친절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은 과묵한 사장님이 만두를 찌고 내어 준다. 즐겨 주문하는 것은 새우만두다. 얇은 피로 감싸 속이 비치는데 양쪽 끝은 이어 붙이지 않은 길쭉한 형태로 빚는다. 돼지고기와 파를 다져 만든 속에 새우가 한마리씩 들어있어, 담백함과 달콤함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새우의 탱글한 식감도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맛은 아니다. 체인점이기도 해서 비슷한 맛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는 데다가 이곳까지 오는 동안 만두가게를 여럿 지나기도 한다. 가게 안은 좁아 테이블도 몇 개 없다. 포장손님이 대부분이어서인지 대기 공간을 넓게 확보해 두었다. 만두가 쪄지는 동안 사장님이 말을 건네는 일은 없어, 하릴없이 그곳을 서성거리면 입간판(엑스 배너)이 눈에 들어온다. 결식아동에게는 무료로 만두를 제공한다는 문구가 크게 적혀 있다. 일요일에는 자원봉사가 있어 휴무라는 안내도 함께다.


결식아동에게 눈치 보지 말고 걱정 말고 들어와 식사하라는 가게의 안내문을 종종 접한다. 자칫 먹을 것으로 부족함이나 서러움을 겪을 수 있는 아이들에게 내미는 손길이 따듯하다. 이런 인성라면  음식에도 진정일 것이라는 신뢰가 생긴다. 맛과는 전혀 인과관계가 없는 믿음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을 담아 만드는 음식일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이곳은 자주 찾게 되는 맛집이다.


매일 아침 긴 빗자루로 가게 앞 길을 쓰는 가게도 내게는 맛집이다. 그 성실함이 분명 음식의 곳곳에 깃들어 있을 것이다. 가게 앞 구석진 곳에 길고양이를 위한 물과 사료를 내놓은 집도 맛집이다. 약한 존재를 돌보는 따스함이 내게도 전해질 것이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담은 통을 내어 두고 자유롭게 쓰고 편안한 때에 돌려달라 적어둔 가게도 맛집이다. 곤란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아낌없는 배려를 나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야근으로 늦어진 퇴근길 맛집으로 새우만두를 사러 간다. 고픈 마음에 따듯함 담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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