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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Mar 04. 2023

어묵꼬치

여행의 시작

여행을 계획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목적지를 정하고 지도 앱으로 사전답사를 떠나, 경로를 가늠하며 미리 걸어본다. 늘어선 풍경을 상상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고심한다. 공기를 맛보는 일도 상상한다. 조금만 벗어나도 공기는 달라지는데, 지역마다 기억되는 그 맛을 느끼는 일은 언제나 들뜨게 한다.


그러다 날짜가 지날수록 어느새 귀찮음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집 나가면 고생인데. 언제 짐을 싸나, 어느 세월에 거기까지 가나, 뭐 하러 여행 따위 가려했을까. 크게 짓는 한숨은 변덕쟁이가 따로 없다. 여행은 떠나기 전이 가장 즐겁구나 하고 계획이나 세우던 지난날의 내가 부럽기까지 하다. 목적지에 도착해 여행자가 되면 다시 들뜰 것이 분명하니 이것은 기한이 있는 응석이다. 그러니 조금은 달랠 것이 필요하다.


뚜벅이 여행의 출발점은 대게 기차역이다. 이른 아침 귀찮음을 짊어지고 꾸역꾸역 도착한 곳에서 우울해로부터 나를 건져줄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다행히도 기차역에는 먹거리가 많다. 유행에 따라 크림이 가득한 도너츠나 토핑이 잔뜩 올라간 유부초밥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지만, 터줏대감처럼 오랜 시간 버티고 있는 녀석들이 좀 더 반갑다. 호두과자는 그 대표주자로, 동글동글 달콤한 냄새가 없는 기차역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햄버거도 좋은 선택지이다. 지천에 체인점이 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안에 먹어야하는 떠남을 앞둔 자의 제약이 평소와는 다른 맛을 전해준다.

하지만 호두과자도 햄버거도 신남을 얻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그럴 땐 어묵꼬치다. 기차역 구석의 좁은 가게에서는 커다란 어묵꼬치를 한가득 끓여 판다. 주문하면 긴 종이컵에 국물과 함께 담아주는데, 사각어묵을 접은 것과 구멍 뚫린 어묵이 한개씩 꽂혀 있다. 테이블은 따로 없다. 가게가 좁기도 하지만, 어묵꼬치를 먹는데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대신 좁은 선반이 벽을 따라 둘러져있어, 그 근처를 차지하고 서서 먹는다.


전광판을 멀리 내다보며, 아직 내가 탈 열차 번호가 표시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한입, 또 확인하며 한 모금, 어묵꼬치를 즐긴다. 꼬치를 쥐고 먹는 것은 신이 나는 일이다. 닭꼬치나 핫도그도 그렇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러한 먹거리는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먹게 된다. 게다가 이런 먹거리들은 목적지로 이동 중에 잠시 들러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최종 목적지로서의 여유보다는, 얼른 먹고 가야지라는 동동거림이 함께 하게 된다. 꼬치를 쥐고 먹는 신이남과 출발의 시동이 함께 걸리는 것이다.


변덕은 언제든 다시 시작될 것이다. 즐겁게 계획한 여행을 목전에 두고, 왜 또 기차표를 예매했을까 하는 변덕 말이다. 때로는 여행지에서도 별것 아닌 틀어짐에 왜 왔을까 하는 짜증 섞인 변덕을 부리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어묵꼬치를 쥔 신남이면 이러한 응석쯤 달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테니. 덕분에 신나는 여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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