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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Apr 15. 2023

감자 샐러드

집중력에 위로를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기 어렵다고 한다. 아마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동안 다른 일을 떠올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여러가지일을 동시에 잘 할까 싶지만 그것도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도 금세 다른 일을 떠올리고 만다.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해나가면 좋으련만, 급한 성격에 떠오른 생각을 재쳐두지도 못한다. 한편에 치워두면 어느새 기억도 못한채 사라져 버릴 거 것 같은 초초함이 따르기 때문이다. 하고 있던 일에 떠오른 일, 떠오른 일을 그냥 두면 안될것 같은 불안까지 뒤엉켜 엉망이 되고 만다. 어쩔 수 없이 메모만 늘어나 포스트잇이 빼곡히 모니터 한편에 매달린다. 오늘도 일이 늘어지고 늦어진다.


그래도 떨어지는 집중력이 도움이 되는 때도 있다. 다양한 재료를 손질해야 하는 때이다. 감자 샐러드처럼.


감자 샐러드는 '감자'가 주재료이긴 하지만 그 밖에도 많은 재료가 필요하다. 각각 손질하는 방법도 달라서 꽤 손이 간다. 감자와 오이, 양파, 당근, 계란. 마요네즈와 소금, 후추까지 넣어야 하니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다.


머리를 깊이 숙이고 감자 껍질을 벗겨내다가 '아차, 계란을 먼저 삶았어야 하는데' 하고 빼먹은 과제를 떠올린다. 얼른 냄비에 물을 받아 소금과 식초를 넣고 계란을 삶기 시작한다. 다시 감자 껍질 벗기기로 돌아가는 동안 준비해 둔 재료를 가늠하며 한눈도 팔아본다.


오이를 얇게 써는 동안 냄비에 물이 끓는 소리에 '앗! 감자를 쪄야지' 하고 칼을 내려놓는다. 당근도 같이 넣어 살짝 찔 셈이다.


다시 오이 썰기로 돌이간 사이 계란이 다 익을 시간이 되었음을 떠올린다. 잘 삶아진 계란의 껍질을 벗기고 다져 둔다. 쿡쿡 찔러본 감자도 다 익었다 싶으면 물기를 제거하고 으깬다. 소금과 후추로 간단히 간을 한다. 소금을 뿌리는 새에 연관된 다른 과제가 떠오른다. ‘오이 절여야하는데!’ 오이에도 소금을 뿌려둔다.

 

양파를 다지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양파도 절여야 한다. 짜지 않으려나 조심조심 소금을 덜다가 '어머 오이 짜지면 안 되는데!' 하고 소금에 절여둔 야채로 손을 옮긴다. 잘 헹궈 물기를 제거한다.


집중력이 뛰어났다면 껍질을 벗기는 동안 계란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재료를 써는 동안 감자를 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껍질을 다 벗긴 후에야 계란을 삶고, 재료를 다 썬 후에야 감자를 찐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짠맛이 나는 오이를 구제할 수 없을까 동동 거리는 것은 덤이다.


그러니까 이건 떨어지는 집중력에 대한 위로다.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떠올린 덕분에,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하고 있던 일의 속도는 늦어졌을지 몰라도 잊혀진 일은 없다.


그러니까 괜찮다.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많은 일들이 언젠가는, 잘 익은 감자의 부드러움을 담아, 잘 절여진 양파의 달콤함과 오이의 아삭함을 담아, 마요네즈의 고소함을 담아, 맛있게 완성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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