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지 인연인지 직전 학기에 수강한 과목 2개가 디아스포라를 다루는 강의였다. '디아스포라는 어느 곳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들은 언제나 자기자신을 '설명'해야한다. 고향에서도, 자신의 정착지에서도 이들은 모두에게 있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교수님의 말이 오래도록 머리에 남았다. 이 책에 이끌린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일지도 모르겠다.
<벌집과 꿀> 안에는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보선>에서는 출소 후 미국 북부에서 삶을 시작하는 한국계 청년 보의 이야기를, <코마로프>에게서는 탈북 이후 스페인에서 청소하며 살아가는 주연의 이야기를, <역참에서>는 에도시대, 조선인 고아 소년의 송환을 호송하는 사무라이의 이야기를, <크로마>에서는 탈북한 부모를 둔 부부 해리와 그레이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표제작인 <벌집과 꿀>에서는 19세기 말, 연해주에서 고려인들의 정착촌을 관리하는 러시아 장교의 이야기가, <고려인>에게서는 사할린에서 자란 막심이 아버지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마지막 <달의 골짜기>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고향으로 돌아온 동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들은 모두 어떠한 이유에서든 '떠난' 사람들이다. 정착한 듯 보이지만 깊게 뿌리내리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정한 가치는 '떠남' 그 자체보다 떠남 이후에 인간에게 남아있는 관계의 회복과 연대를 보여준다는 것에 있다. 고향은 잃어버린 그들은 자신의 기억 안에 보이지 않는 집을 짓는다. 타지에서 만나 새롭게 가족을 이룬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가 이주민이지 않을까. 물리적인 이주를 경험하진 않았더라도,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고,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며 살고 있지는 않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타지살이 한번 경험하지도 않았으면서 너무 안일한 공감이려나 조심스럽기도 하다.
<벌집과 꿀>이라는 작품집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매 순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경험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묻어나고, 역사 속에 잊혀가는 한국계 디아스포라를 다시 한번 조명한다.
이 순간도 자신의 정채성을 찾기 위해 떠도는 모든 디아스포라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6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