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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Apr 17. 2019

나는 내가 너무 애틋하다

(with 눈이 부시게 1화)

____거기 방송반 모임 가니까 다 잘 된 것들 밖에 없디? 그걸 거기 가야 알어? 거기 안 가도 너보다 잘난 것들 세상천지야. 너 그럴 때마다 이렇게 질질 짜면서 이렇게 드러누워 있으면 그게 방법이 돼? 해결이 되냐구? 잘난 거랑 잘 사는 거랑 다른게 뭔 줄 알아? 못난 놈이라두 잘난 것들 사이에 비집구 들어가서 나 여기 살아있다, 나보고 다른 못난 놈들 힘내라, 이러는 게 진짜 잘 사는 거야. 잘난 거는 타고나야 되지만 잘 사는 거는 니 할 나름이라구.


JTBC 드라마_<눈이 부시게 1화>中






 엄마는 속상했다. 엄마 눈엔 너무 대단한 딸이 잘난 것들 사이에서 주눅 들어 들어와 우는 모습이.


 드라마 속 혜자는 대학 졸업 후 어느 순간부터 아나운서 시험도 보지 않고, 아나운서가 자신의 길이 아닌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하는 청춘이다. 동기는 이미 아나운서가 되어 있고, 첫사랑은 잘 나가는 종군 기자가 되어 있고. 혜자는 이제 모임에서 그들과 마주하는 일이 자신도 모르게 점점 버겁다. 그런 혜자에게 첫사랑과 함께 나타난 남자는 불쑥 질문을 던진다. 왜 기자가 아닌 아나운서냐, 기자도 같은 일들을 하는데, 편하고 폼 나는 일이니까 아나운서가 되려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인지 비난인지 구분 가지 않는 말투에 혜자는 의기소침해지다가, 화가 나고, 제대로 반박도 못하고 집에 돌아오니 괜히 억울하다. 편하고 폼 좀 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게 뭐 어때서! 무엇보다 타인의 선택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다니! 나도 화가 났다, 하지만 이내 의기소침해진다.


 꼭 그렇게 누군가 꼬집어 주지 않아도 현재의 내 위치는 내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 이미 깊이 상처 나 있을 혜자의 마음이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다. 나는 스물다섯 살도 아니고, 취준생도 아니지만 마음만은 새파랗던 이십 대처럼 갑자기 꿈꾸고 있는 기분이어서 일까. 20대의 혜자가 꼭 지금의 나 같았다. 쉽게 주눅 들고, 매사 자신 없고, 자꾸 물러서고.


 혜자를 보며 나를 돌아보니 나는 꿈을 가져본 일이 없더라. 뒤늦게 자그마한 꿈 하나를 손에 쥐고 어쩔 줄 모르는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있을 뿐이었다. ‘남은 시간은 읽고 쓰는 일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 이후의 시간은, 흔한 말로 맨땅에 헤딩 중이랄까? 이렇게 무식하게 헤딩만 하다가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읽는 사람, 쓰는 사람,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라도 하고 싶어 문화센터 수필반에 덜컥 등록했더랬다. 그런데 세상에나, 처음부터 너무 잘 쓰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와 버린 것 같다. 자주 못난 내 모습들과 마주하며 깨질 것 같던 머리가 드디어 깨진 것도 같다.


 얼마 전엔 친구가 “아직 일 안 하지? 요즘 뭐 해?”라고 아무 감정을 담지 않은 무척이나 사무적인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 명치 근처 어디에 걸려 나를 불편하게 했다. ‘아직’이란 단어에는 ‘언젠가는 결국’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짐작하는 질문의 다른 말은 이것이었다. “그래서, 언제 다시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갈 거야?”

 

 잘 모르겠다. 앞으로의 시간들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정해 놓은 것이라고는 남은 시간은 읽고 쓰는 일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 하나뿐이니까.


 별생각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는 어떤 선명함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질문에 주춤거렸던 건, 늦은 나이에 그저 꿈만 꾸는 것처럼 보일까 하는, 쓸데없고 희망 없는 일에 시간 낭비나 하고 있는 한량으로 보이 지나 않을까 하는, 혹은 현실 감각을 잃고 철없이 꿈만 꾸는 어른 아이로 보지 않을까 하는, 자격지심 같은 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집안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인간이 공식 백수 상태니, 어딜 가도 어깨가 움츠러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이미 어느 정도의 예상 답안을 그려놓고 던지는 친구의 질문에 그날 결국 끝까지 머뭇거리기만 했다.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엔 괜스레 생각이 많아진다. 사정이 허락하는 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보겠다는 난, 잘 살고 있는 걸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롤러코스터다.


 그런 내게 잘난 거는 타고나야 되지만 잘 사는 거는 내 할 나름이라는 드라마 속 혜자 엄마의 말이 위로가 됐다. 꿈도 없이 어쩌다 보니 지금의 내가 되었던 삶, 사람들이 나로 인정해 주었던 삶보다, 기가 막히게 잘 써서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사람들 틈에서 한 자라도 더 읽으려 시간을 정리하는, 머리 쥐어짜며 나름의 좋은 문장을 써보려고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매일 아침 카페로 출근하는, 책을 읽고 타인의 감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지금의 내 모습이 꽤 맘에 든다. 깨진 머리에 씨익 웃으며 반창고 하나 붙이고 다시 시작해 볼 객기와 같은 용기는 어디서 생겨나는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당연히 생산적인 일로 복귀할 거라 믿는 나의 잘 나가는 친구들에게 지금의 내 모습은 뭐 하는 짓인가, 하고 좀 못나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나 스스로의 모습이 드라마 속 혜자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래 좀 애틋하다. 나는 내가 너무 애틋하다.


 잘나 보이는 삶에서 빠져나와 못나 보이는 삶의 한가운데 있어도 잘 사는 거라는 믿음을 조금씩 키워본다. 이렇게 조금씩 물을 주고 잘 가꿔도 꽃을 피우지 못할 확률이 크다는 것은 물론 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쁜 장미가 꽃이 피어있는 순간에만 장미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햇살의 뜨거움과 비바람의 위태로움을 견디는 그 순간들을 지나 아무것도 피우지 못했대도 장미는 장미의 이름으로 산다. 어떤 삶을 살든 ‘나’라는 존재의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읽고 쓰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나를 이루는 가장 커다란 본질은 ‘쓰는 사람’ 일 것이다. 그런 내가 되기로 한 것이다. 이 선택이 결국 남은 내 인생을 눈부시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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