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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Jun 06. 2019

​나에겐 아직 '엄마'가 있다.

(with. 디어 마이 프렌즈 - 14화)

2019년 5월 9일, 엄마는 오른쪽 편마비와 함께 말을 잃었다.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한 달이 지나간다. 다가올 시간이 결코 지금보다 나을 리 없다는 점에서 매일 절망감이 내 몸속 구석구석을 파고든다.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가고 몰아치는 생각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시간들이 눈 앞에 있다는 사실은 도무지 현실감이 없다.


엄마는 늘 아팠지만 크게 아프지 않았다. 오래 앓아온 당뇨와 혈압도 조심조심 다스리며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노인이 되면 다 이만큼은 아픈 거야"라는 말은 엄마를 돌봐야 하는 나에게 늘 묘한 면죄부를 주곤 했다. 그렇게 나는 이기적이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엄마를 발견한 순간 가장 먼저 한 생각은 '큰일 났다'였고, 중환자실에서 힘겹게 숨을 이어가는 엄마를 하루 두 번씩 면회할 때는 뭔지도 모를 어떤 것인가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울면서 바라는 그 간절함이, 엄마가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가, 엄마보다 나의 허전한 일상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죄책감을 함께 불러왔다. 그런 순간에도 나는 그렇게 이기적이더라.


엄마를 볼 때마다 세상에 이런 슬픔도 존재하는구나, 한다. 그런데 그런 세상없는 슬픔 사이사이에는 불쌍한 엄마의 역사에 대한 연민보다는, 혼자의 삶을 견뎌야 한다는 나에 대한 연민이 어쩌면 나를 더 슬프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지점에 이르면 나는 더 이상 순수하게 슬퍼만 할 수가 없다.


사람은 위기상황이 왔을 때,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게 된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엄마의 암 소식을 첨으로 영원이 이모에게 전해 들으며 나는 그때 분명히 내 이기심을 보았다. 암 걸린 엄마 걱정은 나중이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사나, 그리고 연하는... 어쩌나. 나는 오직 내 걱정뿐이다.


그러니까, 장난희 딸 나 박완은, 그러니까,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노희경 드라마_<디어 마이 프렌즈, 14화> 中


드라마 속 완이 떠올랐다. 완은 엄마와 떨어져 살기나 했지, 나는 태어나 사십 년 넘는 시간을 엄마와 떨어져 살아본 적도 없었으니까, 딱 그 시간만큼의 염치없음을 차곡차곡 쌓아왔을 터인데, 버릇이라도 된 건가.. 이런 절박하고 아득한 순간에도 끝까지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내 모습을 매일 마주한다.


그렇게 이기적인 딸이 요즘 요양 병원에 누워있는 엄마를 매일 찾아가 눈을 맞추고 이야기한다.


 "엄마, 괜찮아.. 뭐라도 자꾸 말하려고 해 봐, 내가 알아들어볼게. 어릴 적 내 옹알이를 엄마는 모두 알아들었을 거잖아. 나도 자꾸 듣다 보면 알아들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내 차례가 된 걸 거야. 엄마가 내게 주었던 모든 것들을 갚을 순간이 온 걸 거야."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럽고, 마음의 준비를 해도 해도 예상을 뛰어넘는 슬픔뿐일 것이다. 끝까지 나만 생각하는 엄마는 내게 그런 어마어마한 이별과 슬픔에 조금은 무뎌질 수 있도록 어떤 시간을 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엄마'라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에겐 아직 '엄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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