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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Apr 26. 2019

우리는 모두 시한부다

(with. 디어 마이 프렌즈 - 3화)

 첨으로 엄마의 늙은 친구들에게 호기심이 갔다. 자신들의 영정 사진을 재미 삼아 찍는 사람들, 저승 바다에 발목을 담그고 살아도, 오늘 할 밭일은 해야 한다는 내 할머니.. 모두.. 시. 한. 부. 정말, 영원할 거 같은 이 순간이, 끝나는 날이 올까? 아직은 믿기지 않는 일이다.


노희경 (tvN,2016)_<디어 마이 프렌즈 3화> 中




 

영정 사진을 무슨 이벤트인 것처럼 모여 찍는 엄마와 엄마 친구들을 보며 흐르는 완(고현정)의 내레이션처럼 나도 그랬다. 정말 삶이 끝나는 순간이 올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젊은 사람들은 언젠가 죽을 걸 알지만, 그 죽음이 가까운 미래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법이니까.


 - 폐암이 의심됩니다. 종양이 보이는데 크기가 너무 커서 심장을 건드릴 위험 때문에 수술은 할 수 없을 거예요.


어려 보이는 의사는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냥 조심조심 나와 엄마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이후에도 많은 말들을 했지만, '그래서 나는 죽는 걸까?' 하는 내 안의 물음과 옆에서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하얘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했던 엄마의 얼굴만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날 이후, (림프종 암이라는) 정확한 진단 결과를 들을 때까지 엄마와 나는 잠들 수 없어 등을 돌리고 누운 밤, 서로 몰래 많이 울었다. 몰래 울었지만 숨의 사이 끝내 삼켜낼 수 없던 몸의 떨림과, 희미한 등 아래 빨개진 눈까지는 숨길수 없어서 우리는 늘 울었다는 사실을 들키곤 했다.


남편을 보낸 지 2개월 만에 막내딸마저 잃을지도 모를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2년을 지나왔어도 심장을 완전히 가렸던 가슴의 종양과, 세상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는 듯하던 엄마의 얼굴이 낙인처럼 남았다. 나는 아득한 절벽 그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겠지만, 엄마는 발을 헛디뎌 그 절벽 아래로 이미 떨어지고 있는 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지금도 가끔 말한다.


- 네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네가 나를 살렸어.


하지만, 이기적인 딸은 이따금씩 이 말에 짓눌린다. 기어코 엄마보다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는 책무라도 지고 있는 듯이. 이래서 딸은 딸이다.


여든을 바라보던 엄마는 이제 여든이 되셨고, 여전히 나는 미래가 위태롭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연장된 내 삶이 정말 엄마의 삶도 함께 연장시킨 거라면, 아픈 몸으로 매일 엄마를 걱정시키며 살고 있는 지금은 엄마의 하루를 불안으로 물들여 외려 엄마의 수명을 깎아 내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같은 나이 근처 할머니보다 부쩍 늙어버린 엄마를 보며, 걱정 많은 나는 아침에 깨어나면 버릇처럼 잠들어 있는 엄마의 숨을 확인한다.


- 엄마, 오래 살아. 오래 살자. 그래도 나보다 오래 살지는 마.


우리는 모두 시한부다.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이 삶이 끝나리라는 것을 알아도 오늘이 그날은 아닌 것처럼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다 나처럼 걸음도 잘 걷지 못하는 늙은 노모의 숨을 확인하는 일로 하루를 연다 거나, 심장을 가린 커다란 종양에 삶이 눌리는 각자 시간의 경험 같은 것들로 그날을 조금 더 가까이 두고 살아가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확률을 생각하면 아마도 나는 엄마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확신하지 않는다. 다만, 그 확률이 내 삶에서만은 비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닌 것에 헛된 희망을 품지 않는 내가 '그래도'라는 마음에 오늘을 기대는 것은 그것만이 내가 엄마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가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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