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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Jan 04. 2021

가족이 보고 싶습니다

(feat. 페스트 - 알베르 카뮈)






평범한 인터뷰였다. 집과 직장을 서울에 두고 대구로 달려간 화면 속의 간호사도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유재석도 담담히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지내시냐 물어도,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물어도 그녀는 연신 ‘괜찮습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반복했다. 무엇인가를 삼키는 듯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눈물이 흐를 것 같았고, 그러면 나도 따라 울 것만 같았다. 


말이란 단순한 소리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말의 사이 불규칙한 숨소리, 미세하게 떨려 나오는 목소리, 아무리 힘을 주어도 흔들림을 감출 수 없는 눈동자, 그녀의 그 모든 몸짓들 안에 ‘가족’이 담겨있다는 걸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결국 ‘이상하다고, 밝게 얘길 하시는데…’라며 말을 끝맺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마는 유재석을 따라 울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으니까. 




방송을 보던 그때, 뇌경색으로 쓰러진 엄마는 9개월째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중이었고, 나는 매일 요양병원을 드나드는 중이었다. 


엄마와 나를 생이별하게 만든 감염병 신종 코로나, 치료제 없는 새로운 병이 바꾼 일상은 불편했다. 일주일에 한 번, 마스크 두 장을 사려면 약국 앞의 긴 줄 어디쯤에 서 있어야 했고, 터덜터덜 한참을 걸어 도착한 도서관에선 마스크를 잊고 나와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사람들을 만나도 악수하고 끌어안아 인사하던 몸의 기억들도 버려야 했다. 어색했다. 의식하기 전에 튀어 나갔던 손과 마음이 자꾸 멈칫거리며 빈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요양 병원이 감염될까 하는 불안을 제외하면 나머지 나의 일상은 그저 좀 불편한 정도였다. 2020년 2월 즈음, 그때는 그랬다.


견딜만했고, 견뎌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엄마의 위독함으로 촉발된 불안에 불편함이 더해지면서는 불편함도 거대한 불안의 일부가 되어갔다. 갑자기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시간을 따라 더디게 차오르던 불안이 답답함과 무기력으로 성질을 바꾸며 넘칠 듯 찰랑거렸다. 그런 나를 결국 눈물로 넘쳐흐르게 만든 마지막 한 방울, 그게 바로 유재석의 눈물이었다. 


그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엄마를 볼 수 있을 때마다 마지막 인사를 했다.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선한 인상의 요양병원 선생님의 눈빛과 말들도 계속 마음의 준비를 하게 했다. 마지막 인사가 꼭 ‘끝’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 나를 다독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마지막을 준비하곤 했다. 




어떻게 견뎌야 할까. 2020년 한 해,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이었을 것이다. 


카뮈가 7년을 매달려 완성해낸 역작 <페스트>에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죽은 쥐의 출현으로 시작된 질병 페스트에 도시가 고립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희망마저 보이지 않을 때, 의사 리외는 성실성만이 상황을 헤쳐 나갈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성실성은 ‘본인의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세상은 중요한 일을 하는 몇 사람에 의해 달라지겠지만, 달라진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은 재난에 휘둘리지 않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연대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유 퀴즈’ 속에 나온 대구로 내려간 간호사, 졸업과 동시에 현장으로 파견된 간호장교들, 사명감으로 응급실을 지켜내는 의료인들, 그리고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나의, 우리들의 성실성으로 말이다.


알고 있었다. 그때 내가 해야 하는 일도 명백했다. 내 자리에서 지킬 수 있는 것들을 지키며 생활을 이어가는 것. 엄마를 보지 못하는 상황들을 잘 견뎌내는 것.


‘코로나 19가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유재석의 질문에 ‘가족이 보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던 간호사의 대답이, 울음을 삼킨 목소리가 지금도 떠오른다. 모든 시간을 견디고 코로나가 물러가면, 나도 그렇게 보고 싶던 엄마에게 매일 달려가 못 보고 지냈던 힘들었던 시간들을 손 꼭 잡고 하나하나 자세히 얘기해주리라, 다짐하며 그 시간들을 견뎌냈다.




‘코로나 19가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그래서 나의 대답도 늘 다르지 않았다.


'엄마를 매일 보러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2020년 4월 2일, 엄마는 나를 남겨두고 기어이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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