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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Jan 06. 2021

행복하려 노력할 것이다

(feat. 자기만의 공간 - 유주얼)


                        



"나 좀 혼자 살아볼까?"

결혼 생각이 없던 서른 살 즈음, 나는 매일 독립을 꿈꿨다. 엄마는 물론 반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한다. 그때, 결혼해서 집을 나가라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일찍 '혼자'의 생활을 시작했다면 지금 나는 조금 덜 힘들었을까, 하고 말이다.


아버지를 보내고, 엄마마저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자, 30년 넘게 살던 집은 순식간에 견디기 힘든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자발적 독립에 실패했던 나는 비자발적으로 독립당해 '혼자'의 삶을 꾸리게 되었다.


한동안은 내가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엄마가 옆에 없다는 슬픔에 압도되어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길을 잃은 사람처럼 집 안 어딘가를 서성이는 게 일이었다. 배회하는 내 모습이 견딜 수 없어지면 급한 일이라도 있는 양, 비행기 시간이 당도한 여행자라도 되는 양 집을 나섰다. 카페로, 요양병원으로 공간을 이동했다. 하지만 여행이 즐거운 건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돌아갈 곳 없는 마음의 자리엔 불안이 빼곡히 들어섰다. 나빠지는 일만 남은 엄마를 보는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하루하루 불안의 경사가 급해졌다. 변곡점 없이 가파르게 오르기만 하는 생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그동안 왜 모르고 산 걸까. 숨이 찼다. 


그때 혼자 밤을 견뎌야 하는 집은 새해 첫 책으로 읽은 '자기만의 공간'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그런 낭만 따위는 없었다. (이 책이 낭만적이라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그저 슬프고 괴로웠다. "삶은 집에 깃들지 않는다. 저녁에 들어가서 눕는 집이 지금의 내 삶에 하루하루 스며들어 간다."(p.89) 조금 다르겠지만, 집을 옮겨 다니던 저자에게 짐이 빠진 텅 빈 집을 바라보는 마음이 있었다. 살고 있을 때의 감정이 짐과 함께 빠져나간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공간을 바라보는 마음 같은 것. 엄마의 삶이 깃든 집을 정리하고 이사를 하는 날, 모든 짐들이 다 빠진 낡고 텅 빈 아파트에는 더 이상 어디서도 엄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슬픔이 빠져나간 집, 그 사실에 울컥했다. 오히려 나는 지금, 엄마와 살아본 적도 없는, 혼자의 삶을 열심히 꾸려가는 나의 새로운 작은 공간에서 매일 엄마의 흔적을 느낀다. 아마도 슬픔은 내가 짐과 함께 등에 업고 온 듯하다. '잘 다녀와' 인사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집을 나서는 등 뒤로 매일 들린다. 내가 어디서 살든, 아마 나는 때때로 엄마와 함께일 것이다.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에 산 지 2년이 되어간다. 이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돌아가시고 자주 응급실을 들락거렸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생활을 엉망으로 지낸 탓이었다. '자기만의 공간'에 혼자 있다는 건, 위급한 순간에도 내가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응급실에 보낼 수는 있어야 했다. 응급실에 갈 만큼 아프지는 말자. 작년 한 해, 내가 가장 많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그건 다짐이다. 아예 안 아플 순 없지만 100% 아플 만큼 나를 내버려 두지는 말자는 다짐. 내가 나를 지킬 수 있을 만큼만 아프기 위해서 점점 평상시에도 긴장을 놓지 않게 된다." (p.61) '혼자'를 경험해본 이라면 누구라도 문장에 깊게 공감할 것이다. 이 삶의 가장 큰 과제는 내가 나를 돌보는 일이었다. 뒤집어 말하자면 나는 나이와 상관없이 엄마에게 돌봄을 받는 어린아이였다는 증명이 될 터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끝엔 어김없이 부끄러움이 자리한다.


부끄럽고, 저자처럼 적극적으로 선택한 삶도 아니지만, 천천히 나만의 공간에서 혼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제대로 잘 먹으려고 노력하고, 걷고 뛰고 운동도 거르지 않으려고 한다. 날이 추워도 하루에 한 번 창문 열고 집안 구석구석 먼지도 닦아낸다. 재미있는 책이나 드라마도 12시를 넘겨가며 보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워두었다. 하다 보니 내 한 몸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에도 수많은 규칙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제야 알아간다. 사람은 함께일 때 자극받고 혼자일 때 성장한다고 한다고 했다. 이제야 나는 온전히 내 의지로 성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대신 나는 좋을 일을 하고 싶다. 아이를 기르는 육아 대신 나 자신을 기르는 육아를 하며 지낼 것이다. 나 하나 들여앉힐 자리도 빠듯한 깜냥이 이제는 조금 더 넉넉했으면 싶어서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서로의 삶을 거르고 빼는 것 없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는 내가 고른 행복과 살아가고 싶다." (p.95)


사는 일에, 사람 마음에 정답은 없다. 남은 삶은 혼자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음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지만 이제는 나의 선택으로 끌고 갈 것이다. 선택의 옳고 그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선택이 옳은 일이 되도록 만드는 노력만이 남아 있을 뿐. 저자의 말처럼 나도 내가 고른 행복과 살아가고 싶다. 


행복하려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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