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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Dec 27. 2021

나는 당신이 아니다

with. 오지은_<익숙한 새벽 세시>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자라면서 가장 난감한 것은 아마도 절대 스스로를 좋아할 수 없다는 부분일 것이다. 자기가 가장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의 피를 가지고 태어나, 오랜 시간을 같이 살았기에 비슷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 그것을 고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해야 하는데 말 그대로 참 피곤한 일이다. 나의 이십 대는 부모에게 받은 것과 익숙한 그로 인해 굽어버린 것들을 떨치고 교정하려고 노력하는 십 년이었다.


오지은_<익숙한 새벽 세시> (p.116)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쓴 것 같은 문장은 만나는 날이 있다. 그런 문장들은 읽고 나서 삶의 순간순간 자주 떠오르고, 그때마다 시간을 따라 다양한 생각의 변화를 겪으면서 나의 문장으로 소화가 되곤 한다. 이 문장도 그랬다. 아니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아빠와 열 살 무렵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우리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에 대해 아빠를 탓했다. 나는 어렸고, 아빠는 어른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허무한) 그 숫자와 역할이 가진 힘의 크기에 억울한 일이 많았다. 학교들을 다 졸업하고 나서는 "엄마, 아빠도 그 역할로 사는 게 처음"이라고 말해주는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를 통해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끄덕임이 완전한 이해는 아니었다. 늘 이해하겠다는 머리와 한 걸음 앞서 달려 나가 버리는 마음과 경주를 하느라 늘 피곤했다.


오지은 작가님의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노희경 작가님 앞에서 펑펑 울었던 날이 떠올랐다. 나도 아빠를 닮지 않기 위한 노력을 참 오래 했다. 늘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마음이 답답했다. 노희경 작가님이 그러셨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건, 타인을 미워하는 일과는 또 다른 일이라고. 내가 태어난 근원, 뿌리 같은 것을 부정하는 일과 같아서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어려워지는 거라고. 그렇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들겠냐고. 작가님은 뭘 해야 한다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기보다 힘들었겠다고만 했다. 나는 힘들었겠다는 그 말을 힘들 때마다 꺼내 삼키며 오랜 시간을 아빠를 한 집안에서 바라보며 버텼다.


어느 날, 서로가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상태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 사라졌으니 문제는 끝났을까? 그렇지 않다. 그때 알았다. 이것이 아버지가 아닌 나의 문제라는 명확한 증거라는 걸. 사람은 타인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받으면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다. 받은 영향들을 어떻게 소화하는지는 개인의 문제가 된다. 그러니 그 모든 문제의 해결점은 타인이 아닌 '나'에게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매듭을 푸는 것은 내 손에 의해서일 거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오래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 상담소>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문장을 만났다.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당신은 아버지와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이날 또 한 번 펑펑 울었다. 오은영 박사님은 덧붙여 이런 말도 했다. 미워하는 마음이 든다고 당신이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고.


어떤 책에서 이상화된 부모의 이미지를 객관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다른 책에서는 과거에 부모에게 받은 게 없는 사람은 자신이 부모가 되어서도 줄 게 없다고도 했다. 그랬다. 엄마도, 아빠도, 그 역할이 처음이라고 말하는 드라마와 책들을 계속 읽고 봤다. 그러면서 따로 놀던 머리와 가슴이 천천히 가까워져 갔다. 엄마라는, 아빠라는 역할을 벗겨내고 한 사람으로 보려고 노력하면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들도 얼마나 삶이 고단했을지, 처음 겪는 일들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나는 오래 그런 시간을 흘려보냈고, 이제 조금 아주 조금 겨우 알게 됐다. 내게 아빠라는 현실은 늘 힘들고 불편했다. 자꾸 뒷걸음질 치던 나는 자칫 영원한 어린아이로 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읽고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나를 조금씩 어른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믿는다. 


이제 나는 나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어떤 점들을 두고, 부모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그들만이 안다. 그들에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결핍이 있었을 것이다. 그 결핍에 내가 영향을 받았을 순 있지만, 40년도 넘게 살아왔다면 부모에게서 정신적으로 완전히 독립해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고도 남을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당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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