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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Dec 29. 2021

오늘도, 달리기

with. 무라카미 하루키_<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그리고 러너)

1942 – 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p.259)


무라카미 하루키_<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루키가 자신의 묘비에 써넣고 싶어 하는 문장이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도 이 책을 읽었다. 그때 이 책에서 내가 인식한 것은 이런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육체노동이다. 나도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 그러니 그런 노동을 견딜만한 체력이 있어야 한다. 


그때, 1년 반 전에 나는 응급실을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들락거리고 있었다. 극심한 두통과 함께 심장이 빠르게 뛰고 몸의 어딘가가 터지고 말 것 같은 느낌이거나, 눈을 뜰 기운이 없다는 말을 몸으로 실감하는 날들이었다. 응급실에서는 늘 당연히 검사를 해줬다. 나는 항암과 방사선을 끝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환자였고, 뇌졸중과 미세출혈의 신경과적 병력도 가지고 있는, 말하자면 지병이 있는 환자였으므로. 그러나 결과는 계속 어떤 재발의 징후가 있다거나, 커다란 병이 잡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계속 죽을 것 같았고, 그럴 때마다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 의사들의 얼굴을 기억하게 될 즈음, 이러다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 채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이었다. 무작정 헬스장을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한 건. 지금 나는 바로 과거 그 순간의 나 자신을 무한히 칭찬한다. 운동 시작하고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1년 넘게 응급실에 가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이제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주섬주섬 운동복을 챙겨 입고 헬스장에 간다. 매일. 혼자 운동하는 날에 집중적으로 하는 운동은 걷기와 달리기다. 더 나아가 이제는 쓰는 삶을 살겠다고 매일 저녁 카페로 출근도 한다. 

그러면서 다시 읽는 하루키의 이 책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운동을 하면서 이제 겨우 느끼는 모든 삶의 본질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읽을 때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에 다 있다는 좌절과 그럼에도 나만의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동시에 느낀다.






완주가 중요한 것.

골인하는 것, 걷지 않는 것, 그리고 레이스를 즐기는 것.

이 세 가지가 순서대로 내 목표다. (p.200)


나도 목표가 있다. 아직은 달리는 중간중간 걷고 있지만, 달리는 시간의 길이를 5분, 10분 늘려가고 있다. 8km의 속도로 30분이라는 1차 목표도 세워두었다. 그러고 나면 속도가 좀 떨어지더라도 1시간을 달리는 사람에 도전하려고 한다. 그때, 나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시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나도 말해보고 싶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인생이라고 뭐 다를까. ‘달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작가의 말처럼 가보지 않고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인생도 오늘을 살아야 또 내일을 살 수 있는 거겠지. 지금 순간의 의미를 따지지 말고, 일단 달리는 행위에 집중하듯 오늘에 집중한다. 결과는 모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평가되는 법. 


마라톤에 내 인생을 비유한다면, 지금의 나는 가장 힘들다는 35킬로미터쯤에서 숨을 헉헉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고비를 어떻게든 넘기고 나면 호흡이 차분해지고 다리가 가벼워지는 러너스 하이의 구간으로 남은 생을 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본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멈추지 않고 오늘을 사는 것, 인생의 긴 레이스에서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며 즐기려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 그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까 또 달려본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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