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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Jan 01. 2022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with. 백영옥_<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에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에는 새해, 새봄, 새 학기가 제격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거창한 새해 계획은 세우지 않게 됐어요. 시작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건 아니에요. 다만 시간에 대한 관념이 달라진 거죠.


이제는 하나의 행위를 할 때, 그것이 미래에 가져올 결과보다는 행위 자체에 더 집중하려 노력해요. 오늘 당장 한 장의 원고를 쓰겠다는 결심이, 노벨상을 받겠다는 원대한 꿈보다 중요합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꼼꼼히 살고, 인생은 흘러가는 대로 놔두자, 이런 마음이 되었다고 할까요.


백영옥_<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p.247)





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날짜와 시간을 정해두고 하겠다고 한 많은 일들을 결국은 실패하면서, 언젠가는 그 일을 할 시간이 있을 거라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살던 그런 사람. 그래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일을 먼저 했던 사람.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무리하며 일을 꾸역꾸역 해내고, 평생 제대로 된 운동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몸으로 나를 방치하고, 좋아하는 글쓰기는 끝없이 뒤로 미루면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제 생각 속 시간은 무한한 것이었습니다. '언젠가는'은 제 머릿속에서 분명하게 올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덜컥 혈액암 진단을 받았을 때 알았습니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나만 영원할 것처럼 살았다는 걸요. 내일부터 다이어트해야지, 다음 달부터 운동 시작해야지, 내년엔 매일 기록하는 삶을 살아야지, 무엇보다 생의 어느 구간에는 꼭 글을 쓰고 살아야지처럼 오늘을 미래로 넘기는 일이 제가 시간에게 부리는 오만함 같은 것이었다는 걸요. 항암과 방사선을 끝내고, 바닥난 체력으로 하루를 버티면서, 그렇게 오랜 시간 불투명한 내일을 끌어안고 살면서 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에게 시간이 무한히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자각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을 걸 알지만, 그게 가까운 미래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법이라 유한한 시간을 모른 척하며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버린 겁니다. 


이제 저는 정확하게 위의 문장과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시간에 대한 관념이 달라져 거창한 계획은 세우지 않는 사람. 하나의 행위를 할 때, 그것이 미래에 가져올 결과보다는 행위 자체에 더 집중하는 사람.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꼼꼼히 살고, 인생은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사람." 


저는 새해를 시작하는 오늘, 이 문장을 떠올립니다. 작년 새해 첫날에도 이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아마 내년 새해 첫날에도 이 문장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지나온 한 해를 생각해 보니 저는 그럭저럭 이 문장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커다란 계획은 없었지만, 운동과 책 읽기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면서. 그런 일 년을 돌아보니 그 무수한 하루의 행위들이 모여 큰 의미가 만들어졌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행복은 행복 자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 오는 것이라더니, 그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더니 행복한 일 년을 보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새해의 경계 없이 계속 어제와 같은 삶을 이어가겠죠. 다만, 한 가지 바라는 일이 있다면, 그래서 지금 온라인으로 떠오르는 해에게 바라본다면, 이제 이 오랜 거리두기가 끝나는 것입니다. 마스크를 벗고 편안하게 만나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수고했다, 잘 견뎠다, 서로를 격려하며 환하게 웃고 싶습니다. 그런 순간이 오면 어쩌면 2002년 월드컵 그 거리에서 모르는 타인과 부둥켜안고 감격을 나누었던 그때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끌어안고 서로의 수고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기어코, 끝끝내 그런 순간이 오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런 순간이 올 때까지 우리 모두 잘 버텨가기를 바라며.


이 글을 지나쳐 가시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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