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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Jan 08. 2022

용기가, 연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with. 유승연_<배려의 말들>


남한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건 용기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이다.

_허지웅(작가)


유승연_<배려의 말들> (p.176)




응급실을 들락거린 경험이 꾸준히 많다. 노년의 부모를 보내는 과정에서 보호자로 갔던 일도 빈번하고, 다양한 병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환자로 가게 된 일도 꽤 된다. 과장해 말해보자면, 어떤 순간에는 응급실이 친근할 정도다.  얼마 전에도 급체로 응급실에 다녀왔다. 오래 견디며 나아지기를 기대해 볼 것인가와 빨리 다녀와서 남은 새벽을 편안하게 잠들어 것인가 사이를 서성이며 고민했다. 그러나 얼마 견디지 못했다. 명치끝으로 심해져가는 고통이 그 고민이 사치임을 강렬하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응급실에 다녀온 사실이 중요한 건 아니다. 응급실에 나 혼자 다녀왔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익숙하고 자연스러움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와서 인식하지 못했던 '혼자'였다.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나이 든 부모님을 보호자로 끌고 가기에는 내 마음이 불편해서 혼자를 고집했고,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는 너무 당연스럽게 혼자였다. 너무 아파 누군가를 불러야 하나 생각했던 순간들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면 '민폐'라는 단어가 그런 나를 막아섰다. 더구나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기준으로 삼는 것이 내 마음의 편안함이어서 나는 늘 '혼자'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면 나는 혼자가 편한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나는 도대체 언제부터 혼자가 편했던 걸까? (생각해 볼 문제다)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와 서로의 근황을 전하다가 급체 이야기가 나왔고, 친구는 그런 위급한 상황에 사람 부르는 연습을 좀 하라고 했다. 나중에 진짜 놀라게 하지 말라고. 가끔씩 툭,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친구와 나눈 톡을 보면서 생각했다. 연습이 필요한 거구나, 내가 너무 혼자에 익숙해져 가는 거구나, 했다. 그러다 읽고 있던 책 <배려의 말들>에서 이 문장을 만났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인식도 하지 못했던, 내 안 저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홀로'의 커다란 이유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나는 용기가 부족했던 거였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부르지 않았던 게 아니라, 수줍은 성격과 부족한 용기로 도움을 청할 수 없었던 거였다. '하지 않았다'와 '하지 못했다'는 내게 그 거리를 상상할 수 없는 문장이다. 이쪽 끝의 문장에 서서 나는 저쪽 끝의 문장에 서있다고 말하고 살았다니... 내가 나를 이렇게나 모르고 산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노경선 박사는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환경적응력이 뛰어난 것이라 이야기한다. “혼자서도 잘해요”는 책상 정리할 때나 쓰는 말이고 사회라는 환경 속에서 잘 적응해 살아가려면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유승연_<배려의 말들> (p.177)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서 생각해 보니, 꼭 용기를 들먹이지 않아도 사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될 일이었다. 

내 곁의 가까운 이가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나는 상대와의 거리를 재며 생각이나 하고 앉아 있을까? 그 거리에 따라 귀찮아하거나, 왜 나에게 부탁하지?라고 생각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생각 이전에 몸을 움직이게 될 것이다. 진심으로 걱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봉사나 기부를 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내가 좋아서, 내게 도움이 돼서 하게 된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그것은 아마 나의 가치에 있을 것이다. 사람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자신의 모습에서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됨을 인식한다고 믿는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나'의 의미는 내가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 나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말이고 그것은 내 삶의 가치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용기를 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을 얻고도 나는 또 순간순간 '혼자' 끙끙거릴 거라는 걸 안다. 용기라는 게 그렇게 생각만으로 갑자기 생겨나는 것은 또 아닐 테니까. 하지만 이제 적어도 위급한 순간에 손을 내미는 연습을 천천히라도 할 것이다. 도움을 청하고, 기꺼이 도움을 주는 일, 그렇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쳐버리지는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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