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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Jan 15. 2022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그렇다

with. 최은영_<내게 무해한 사람>

시간이 상처를 무디게 해 준다는 사람들의 말은 많은 경우 옳았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상을 알아갈수록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했다.


최은영_<내게 무해한 사람 中 '고백'> (p.202)





어떤 상처가 끝끝내 상처로 남고, 점점 더 나를 아프게 한다는 말은 진실이다. 잊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 돌아봐야 하는 순간인 것도 분명하다. 최은영 작가님은 늘 그런 지점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지나와서야 그건 내 잘못이었다 알게 되는 어린 마음의 순간들, 알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 부정했던 순간들, 침묵하며 고개를 떨구던, 아닌 척 눈길을 거두던 순간,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상처 주고, 감정에서 끊임없이 도망을 시도했던 시간들, 그래서 결국은 관계가 끊어지고 사라지고 말았던. 이를테면 제도적으로 처벌받지는 않지만, 충분히 괴로운 행위의 윤리성에 시달렸던 시간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그렇다.


소설 속에는 그렇게 상처 주고, 상처받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수한 내가 있다. 나 스스로의 깊은 상처에는 늘 해결점이 없어 보인다. 해결하지 못한다면 위로라도 해야 할 거 아닌가. 나는 또 삶을 살아가야 하니까. 그런데 그런 위로, 그러니까 소설의 궁극적인 목적이 그런 삶의 위로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최은영 작가님은 도대체 이 상처를 어떻게 위로할까. 




최은영 작가님을 좋아한다. 대뜸 고백부터 하고 이유를 말하자면 작가님은 늘 그 위로의 끝에 '사람'을 둔다. 정확하게 말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이랄까.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p.209)

신에게 말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 전지전능하다는 신에게 무엇을 구하고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털어놓는다. 우리는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다. 사람에게 열어 보이고,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걸. 최은영 작가님이 신과 같은 절대자가 아닌 사람에게서 그 위로의 해답을 찾으려 하는 점이 좋다. 인간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관찰 그리고 이해, 그런 것들이 내 마음이 따라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다시 한다.



이 책 <내게 무해한 사람> 중에서도 이 단편 <고백>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단편이 결코 위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한몫한다. 삶의 어떤 순간, 어떤 위로에도 불구하고 이 삶의 명백함이란 <고백>의 마지막 문장처럼 "각자의 우산을 쓰고 인사를 나누고 뒤돌아 그렇게 걸어가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이 고독한 삶의 길 위에서 부디 내가 다시 그 연약한 순간 앞에 서게 된다면 그때는 부디 우물쭈물 망설이거나, 어정쩡한 눈빛으로 그 순간의 나를 기만하고, 상대에게 상처 주는 실수를 또 저질러서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더 고독하게 만들지 않기를 이라고 희망해 본다. 


이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다짐을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많은 것들을 잊고, 잃고 살고 있다는 걸 자각한다. 그런데 또 그래도 너는 너의 삶을 살아가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착각일까. 그게 내게는 읽을 때마다 무조건 위로가 된다고 하면 너무 내 멋대로인 걸까.


꾸준히 다시 읽어보는 책들이 있다. 묘하게 그런 책들이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도 그렇다. 그것이 새해를 맞아 다시 이 책을 꺼내 읽어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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