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은 내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신은 인간을 구해주기는커녕, 우리가 뚫고 갈 수 없는 외벽을 세운다. 어디 뚫을 수 있다면 뚫어봐,라고 건방지게 말하는 듯하다. 해답을 물어도 지켜보고 있는 태도는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만의 방법을 찾아서 답에 가까운 말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어린 내가 만난 건 활자로 가득한 책이었다. 작가들은 세상을 향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에 매료되었고, 답을 찾던 나는 글을 쓰면서 최대한 정답과 비슷한 말을 나 자신으로부터 듣고 싶어졌다. 글을 쓸 때면 내 안의 나를 마주하고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짜릿했다.
학창 시절을 지나 대학에 입학할 때도 나는 주저 없이 국문학을 선택했다. 소위 ‘찬란한 시절‘이라 불리는 이십 대의 대학 생활의 거의 전부를 읽고 쓰는 일에 할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꼬마 시절에 품었던 작가라는 꿈은 현실과 타협하면서 포기했지만 그 외에도 글을 쓸 수 있는 직업은 많았다. 나는 잡지를 만들거나 학회에서 문학 공부를 하며 소논문을 썼고 많은 책을 읽었다. 또한 이러한 대화를 끝도 없이 나눌 소중한 동료도 생겼다.
물론 글을 쓰는 과정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간혹 재능이 있다거나 내가 쓴 글에 칭찬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건 손에 꼽았다. 가장 버거웠던 건 비교당하는 일이었다. 타인의 글과 내 글을 나란히 놓고 보면, 내 글을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계속 썼다. 쓰지 않는 편이 더욱 비참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를 기쁘게 만드는 건 인내와 고민 끝에 내놓은 글 뭉치였다. 그렇게 내 꿈은 신문 사회부 기자와 잡지사 에디터를 지나 문학 연구자까지 오게 되었다. 졸업 후에는 당연히 대학원에 진학할 마음까지 가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합격했다. 더욱 심도 있는 공부를 할 생각에 들뜨고 설렜다.
하지만 내가 너무 한 우물만 팠던 것일까? 어려운 공부를 하고 수많은 분량의 글을 쓰고 읽으면서 나는 점점 피폐해졌다. 인상은 차가워졌고 예민한 성정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하필이면 이미 나는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우울증 판정을 받았고 지속적인 치료를 받고 있었다. 덕분에 증세가 악화되었다. 한 번도 내 일에 의구심을 품지 않았기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해본 적 없던 나는 처음으로 읽고 쓰는 일을 잠시 멈췄다. 이러다간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복학 후에는 새로운 마음 가짐을 가지고 걷기로 했다. 거창한 목표보다는 사소한 목표에 초점을 두고 무리하지 않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그럼에도 할 일은 줄지 않았다. 다시 강박과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면서 나는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내가 지금 뭘 쓰는지도 모를 만큼 제출해야 할 문서가 산더미였다. 한 학기, 또 다른 학기가 지나고 드디어 마지막 학기가 되었다. 지난한 과정의 마침표를 찍을 시기가 마침내 다가온 것이다.
이때 나는 쓰러졌다. 이번에는 일상을 향유할 수 없을 만큼 심각했다. ‘이게 사는 걸까?’, ‘이게 맞나?’라는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링거 바늘을 여러 번 꽂아서 멍이 든 손목과 증량된 약 봉투를 보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사랑하는 일을 택했건만 나는 병들고 낡아졌다. 오랜 고심 끝에 나는 쓰기를 중단하기로 했다. 푹 쉬라는 말과 아깝다는 말이 내 주변에서 충돌했다. 그 와중에 다시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책과 지금껏 내가 써 내려간 종이들을 정리했다. 지긋지긋했다. 주는 것도 없이 나를 갉아먹는 이것들을 싹 치우고 싶었다.
문학, 사랑, 저항, 자유와 같은 단어들은 나에게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인다. 그건 단순하고도 복잡한 ‘글’이었다. 나는 이걸 내 역사의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왜 내가 글을 택했는지 계속 고민하려고 했지만 남은 건 백지였다. 아마 죽을 때까지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그저 상상할 뿐이다. 나는 그 상상에도 정지 버튼을 눌렀다. 이제 다 끝이다. 돌아보지 않을 것이란 굳센 마음으로 글과 작별했다.
글과 만든 세상에 종말을 선언하자 허탈함이 밀려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떠났다. 이건 건강하지 않은 연애와 다를 바 없었다. 글쓰기와 아예 다른 직업을 선택했고 그 일을 하면서 나는 조금씩 건강해졌다. 활력을 찾기 시작하면서 이제껏 미뤄두기 바빴던, 한 줄도 읽지 않았던 책을 다시 폈다. 오랜만에 본 책은 내가 사랑했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파란 눈 검은 머리>였다.
그러자 지금껏 내가 사랑했던 책과 작가들이 떠올랐다. 전경린의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과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에이드리언 리치의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 캐럴 길리건의 <담대한 목소리>, <침묵에서 말하기로>, 그리고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 나를 구성하던 그들의 문장과 목소리. 그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흥미롭고 서글펐다.
잔인하게도 글은 내가 먼저 바짓가랑이를 놓지 않는 이상 내 곁에 있었다. 충만함을 주기는커녕 암담함과 모호함만 던지고 계속 질문하게 만들었다. 그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하면 나는 자책했다. 가장 사랑하는 연인에게 고통받는 건 세상이 무너지는 것보다 참담했다. 그래서 곁을 떠났건만. 우습게도 이미 내가 떠났다고 생각했던 글은 손을 놓아도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서 내가 사라진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지금껏 오만과 착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정답 없는 세상에서 그나마 정답에 가까운 대답을 받고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고립에게 잡아먹혀 뼈도 남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결코 쳐다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글에게 울며 불며 매달렸던 것이다. 특히 절망과 낭만이 조우할 때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글을 썼다. 이걸 스스로 자각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글쓰기를, 책을, 문학을 버린 뒤 내 삶은 중력에 이끌리듯 다시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도 내가 글 쓰는 모습을 바란다는 점을 알아차리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글과 한번 붙잡은 손에 깍지를 빼자마자 다시 끼고 싶은 모순. 그제야 글이 나에게 줬던 찰나의 선물 같은 시간이 떠올랐다. 지독하게 미워지다 보니 그 좋았던 순간마저 다 까먹고 있었다.
나는 말 걸기를 좋아하고 응답받길 원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쭉. 냉혹한 사회는 내가 원하는 답을 해주지 않았다. 나의 잠재력이나 꿈이나 낭만을 무시하고 저항력 없는 시니컬한 사람으로 자라길 원했다. 하지만 글은 달랐다. 수많은 활자가 펼쳐진 두툼한 책은 스스로 정답에 비슷한 말이라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책을 쓴 사람, 그리고 그들의 생각이 진득하게 담긴 글을 통해 나는 해방감을 맛보았다. 비로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었던 셈이다.
쓰기를 시작하면서 나의 세상은 조금씩 넓어졌다. 뿌연 시야는 또렷해졌고 모호한 마음은 그 자체로 위로받거나 다채로워졌다. 거침없는 말투와 달리 글을 쓸 때면 섬세하고 진솔해졌다. 다른 자아를 만나는 건 나 자신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달해 주도록 유도했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읽고 쓰는 행위가 없었다면 나를 지지하는 틀이란 이미 무너졌을 테다.
여전히 글쓰기는 복잡하기 짝이 없다. 나에게 발길질을 하고 처절함과 강박을 준다. 그러나 결코 놓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다음 생에 태어나면 글 쓰는 걸 택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현세에서는 글을, 너를 지독하게 사랑하기에 나는 끝을 보아야만 한다. 아마 이 손깍지는 관짝에 들어가서야 풀릴 것 같다.
비슷하지만 다른 말을 하나 더 해야겠다. 나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가족과 친구, 동물, 애착인형까지 포괄하는 이 사랑을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다. 내가 죽어도 내가 쓴 글은 평생 남는다고 했던 대학 시절 한 교수님의 말이 생각난다. 사랑하는 걸 지키고 보존하고 죽음이 아닌 영원에 각인하기 위해서 나는 가장 오래 했고, 잘할 수 있고, 자신 있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개인에게 할당된 사랑은 한정적임에도 그 사랑을 기꺼이 나에게 준 사람들의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 싶다. 운 좋게도 사람에게 상처보다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내 글은 온통 사랑을 고백하는 러브레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 써내려 갈 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보니 글에게 고맙다. 내 앞에 나타나준 덕에 러브레터를 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번 생에서 열렬하고 지독한 사랑을 함께 하고 있는 글과 다시 만났다. 그러고 나서 쓴 글은 연인들에게 보내는 구구절절한 러브레터였다. 이제야 글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물론 나중에는 쓰다가 글이 가진 복잡함과 모호함이 다시 창문을 두드려서 암담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밑바닥까지 가본 글쓰기와 재회한 뒤부터 나는 아주 미세할지라도 해방감을 느꼈다. 그러니 극단적인 온도를 오고 가는 글쓰기라도 나에게 솔직함과 자유, 사랑, 그리고 정답에 가까운 말을 선사해 준다는 건 변함없다. 이걸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리하지 않고 한 문장이라도 쓸 것이다.
추신. 다시 만나서 반가워. 널 알게 되어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