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의 잔여물은 아직도 남아있다
선물 말고 잔여물. 지금의 사이버 성범죄와 n번방 사건에 대해서
어느 날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여동생이 울면서 집에 들어왔다. 놀라서 무슨 일이야? 하고 물으니 자신의 얼굴과 이름 모를 여성의 나체가 합성된 사진이 트위터와 텀블러에 돌아다닌다고 했다. 동생은 열일곱 살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서치를 해보니 사실이었다. '지인 능욕'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익명 계정에는 동생 말고도 다른 이름 모를 여성들도 올라와 있었다. 누구인지 모를 계정 운영자는 피해자의 사진을 올려놓고는, 온갖 저급하고 끔찍한 시나리오를 덧붙여가며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있었다. 00 해서 00한 애, 0000 하고 싶다. 얘 사실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한테 어떻게 당한 애라네요. 님들도 마주치면 어떻게 어떻게 해주세요 같은 말들. 대체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시나리오인지, 그 끔찍한 시나리오를 보고 어떻게 성적으로 흥분할 수 있는지 대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그 형편없고 저질스러운 시나리오에 동조하며 다음 피해자를 제보하는 가해자들의 수두룩한 댓글들을 보고 치가 떨렸고, 화장실로 달려가 평생 몇 번 한 적도 없는 구토를 했다.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하고 온갖 주변인들의 신상정보를 키워드로 구글링을 했다. 아는 얼굴들이 유사한 다른 계정들에서 보일 때마다 머리를 망치로 맞는 기분이었다.
경찰에 신고를 했다. 자료를 가져오라고 했다. 다시 나는 그 계정에서 내 동생을 모욕하는 글을 읽고 사진을 보고 조용히 pdf를 땄다.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내가 어떤 액션을 취하면 그들은 게시글을 지워버리면 그만이었고, 그러면 영영 이들을 못 잡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다음날 손을 잡고 눈치 보며 들어선 사이버성폭력팀에서는 잡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외국에 서버를 둔 곳이라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런 일들이 너무 빈번하고 많아서 더더욱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sns에 사진을 올리지 않는 예방책밖에 없다고. 불필요한 말까지 덧붙였다. 주로 이런 일을 당하시는 여성분들은 외모가 출중한 편이 많기 때문에~ 로 시작되는 무언가 이상한 말.
집에 돌아온 나는 문제의 트위터와 텀블러 계정에 당장 사진을 내리라고, 신고를 접수했다는 멘션을 보냈고 텀블러와 트위터 본사에 게시글 주소를 딴 메일을 썼다. 이튿날 트위터 계정은 사라지고 텀블러 게시글은 삭제되었다. 혹시나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어쩌나 노파심에 이틀에 한 번씩 구글링을 했고, 어떤 사람들이 자꾸만 제보하는 건지 계속해서 올라오는 게시글에 억하심정과 함께 혈육으로서, 어쩌면 보호자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들어 많이 울었었다.
N번방 운영진들이 잡혔다. 잡히기 전까지도 그들은 수사망을 좁혀오던 경찰에게 피해 여성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했다. 그중 하나는 덜미가 잡히기 직전엔 유서를 써서 올렸다. 가관이었다. 피해자에게 사과는 필요 없는 변명일 뿐이며 단지 '우리'에게는 합법적 포르노와 성매매 합법화가 꼭 필요하다고. 성욕구 보장이 국가의 의무라고 써제껴놓았다. 그리고 가벼운 자해를 하고 병원에 실려갔고, 코로나 증상을 호소하며 코로나 검사까지 받았단다. 자기 연민으로밖에 볼 수 없눈 구구절절 먹먹문을 읽자니 진짜 내가 정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산채로 무언가에게 뜯어 먹혔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랐다.
텔레그램 n번방 동시접속자 26만 명. 신천지 이만희를 믿는 신도 수가 24만 명이라고 했다. 그보다 더 많은 26만 명이라는 숫자가 나를 기함하게 만든다. 미성년자 아이가 제 성기 안에서 기어 다니는 수많은 애벌레들로 인해 고통받는 영상을 본 사람들의 수다. 성인에게 강간당하는 아이의 영상에 환호한 사람들의 숫자가, 분변을 먹이고 칼로 자해를 시키고 딸이 엄마에게 털어놓자 엄마까지 성폭행하는 영상을 본 사람의 수가, 노예처럼 부려지는 온갖 엽기적인 성고문을 관전하며 즐기고 부추긴 사람들의 숫자가 자그마치 26만 명이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검열해봐야 할 존재들이 너무 많구나. '그럼에도' 현생을 잘 살아가고 있을 그들과는 달리, 너무 크게 다친 사람들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내가 실상 예수도 부처도 무엇도 아니지만, 처진 그 어깨를 붙들고 눈을 맞추며 말해주고 싶었다. 삶을 저버리진 말라고, 좋은 디퓨저 향기를 맡고 고양이의 얼굴에 코를 비비며 친구들과 나누는 술 취한 취중진담들을, 카페에서 나누는 일상 이야기에 함께 미소를 짓게 되는 삶을 잃어버리지는 말자고. 12월 즈음이 되면 음원차트에 올라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의 설렘을, 1월 1일을 내심 기대하며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푸념을 하던 당신의 삶을 잊지 말라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며 혹여나 당신이 어떤 실수를 했더라도, 이렇게나 큰 대가를 치를 만큼의 실수는 절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