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낭소리 Nov 10. 2019

[다낭소리] EPS-TOPIK 감독

 EPS-TOPIK 감독

 여기는 EPS-TOPIK(고용허가제-한국어능력시험) 시험장. 한국에 일하러 갈 자격을 얻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다. 감독을 맡은 나는 응시자들이 부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책상 사이사이를 지나다닌다. 



 시간은 흐르고 시험장의 공기는 수험생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체취로 인해 점점 탁해진다. 누군가 깊이 한숨을 쉴 때마다 속에서 ‘제발 좀!’하는 소리가 올라왔다. 입을 열거나 겨드랑이를 들 때마다 풍겨오는 역한 냄새. 깊이 맡기 싫어 숨을 조금씩 끊어 쉬게 된다. 어지럽다. 


 더운 나라에 살다 보니 냄새에 예민해진다.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머리를 안 감거나 샤워하지 않으면 안 좋은 냄새가 날 수 밖에 없다. 만약 자주 씻는데도 냄새가 난다면 아마 음식 때문일 거다.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에게서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하듯 여기선 쿰쿰한 젓갈 냄새가 난다. 나에게서만은 냄새가 안 날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 전에는 꼭 양치질을 하고 향수까지 뿌린다. 학생들 가까이에서 수업하다 보니 늘 조심할 수밖에 없다. 


 이번 반 응시자는 모두 남자다. 밀폐된 공간에 성인 남자 마흔 명이라니…. 참다 참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억지로 침을 삼키며 웃어 보였다. 시험 종료 시간이 다가올수록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문제가 생기면 손을 들라고 했더니 나를 불러 은근한 눈짓으로 정답을 물어 본다던가 본인이 체크한 답이 맞는지 확인을 구한다. 초등학생처럼 대놓고 옆 사람에게 말 걸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 애타는 마음이야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부정행위를 하면 퇴실조치니 사고 발생 전에 엄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 이미 대리응시자가 2명이나 나왔다. 


 이번 회차의 시험 응시자는 4천명. 기준 점수만 넘으면 합격이다. 그 중 성적순으로 1500명을 선발한 뒤 2차 면접을 거쳐 한국에서 일할 자격을 부여한다. 그런데 시험 내용보다도 방식이 너무 어렵다. 컴퓨터로 보는 시험이라니, 응시자들의 한숨 소리가 시험장을 메운다. 컴퓨터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시험 전에 마우스 조작법부터 알려줘야 했다. 마우스를 허공에 대고 흔들거나 클릭 버튼을 꾹 누르는 통에 멋대로 화면이 넘어가고 클릭이 안 된다. 당황해서 시험보다 소리 지르는 사람도 나왔다. 이러다가는 한국어 잘하는 사람도 떨어지겠다 싶어서 안타까웠다. 


 인고의 시간 끝에 시험 종료를 알렸다. 바로 성적을 확인할 수 있어 여기저기서 탄식과 환호성이 들렸다. 시험이 끝났으니 나도 엄한 표정을 풀고 나가는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넸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50분 동안 외국어를 붙들고 씨름한 것 자체가 힘들었을 테니까. 재시험이나 2차 면접의 부담도 남아있겠지만 다들 오늘만큼은 맛있는 걸 잔뜩 먹고 푹 쉬었으면 좋겠다. 고생한 나도. 

작가의 이전글 [다낭소리] 도로가 물에 잠긴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