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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Nov 10. 2019

[다낭소리] 말하기 어려운 꿈

 말하기 어려운 꿈 

 시대가 변했다고 느낀다. 학생들은 이메일보다도 sns 메시지를 통해 내게 연락한다. 문법 설명이나 어휘의 구별을 묻는 질문도 있지만 글 교정 문의가 가장 많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메뉴판 번역을 부탁하기도 하고 계약서나 이력서 교정을 요청하기도 한다. 


 종종 경시대회 원고 교정 문의도 받는다. 읽다 보면 좀 더 개입해서 고쳐 주고 싶은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럼 내가 쓴 글이 되어 버리니 학생에게 글을 발전시키도록 질문을 던지거나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하도록 유도할 뿐이다. 센스 있는 학생들은 곧잘 알아듣지만 못 따라 오는 학생들도 많다. 


 안타깝지만 글재주라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여러 번 고쳐도 수상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는가 하면 초고만 봐도 감이 오는 경우가 있다. 소재는 좋은데 살리지 못하거나 글감 자체가 너무 평범해서 승산이 없어 보일 때도 있다.


 ‘말하기대회’나 ‘백일장’에서 수상하려면 원고를 잘 준비해야 한다. 아무리 한국어를 잘하더라도 내용이 특별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눈치 있는 학생들은 조금 포장해서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거나 차별화된 소재를 선택한다. 


 예를 들어서 주제가 ‘나의 꿈’이라고 했을 때 간혹 30년 후의 모습까지 완벽히 그려내는 학생들이 있다. 실제로 그런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대회 출전을 위해 급조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경우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아니라면 감동을 주는 극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 어쨌거나 한국어 능력 평가이기 때문에 한국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가거나 소위 말하는 원대한 꿈을 꾼다고 해야 좋은 성적을 받을 테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는 참 할 말 없는 주제다. 당장은 취업이 가장 큰 목표인 학생들에게 ‘네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어렵다. 보통은 눈앞의 1,2년이 급급해 그 이후를 생각해보지 못 하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을 이용해 버킷 리스트나 연간 계획표를 함께 작성해보기도 하지만 도돌이표처럼 ‘돈을 많이 벌겠다’ 혹은 ‘행복해지고 싶다’라는 말로 끝난다. 


 대회 준비를 위해 학생들의 원고를 읽어 보면 참 답답하다. 너무 순수해서 그런지 이게 대회라는 걸 망각한 것인지 숙제하듯 적어 내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께 집을 사드리고 평생 같이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다.

 회사원이 되어 열심히 일하고 남편과 베트남의 아름다운 곳에 다 가보고 싶다.

 열심히 돈을 모아 가족과 꼭 한 번 한국을 여행하겠다.      


 무엇 하나 보태지 않은 진심이고 현실적인 목표지만 대회에서는 이런 평범한 꿈을 높게 평가하지 않으니 학생들에게 일러주기도 난처하다. 그간의 대회 수상작을 보여 주며 평가 기준을 설명하고 나면 그 뒤는 각자의 선택이다. 원고를 바꾸지 않는 학생들은 수상 대신 한국어 실력 향상을 목표로 지도할 수밖에 없다. 거짓말 시키거나 없는 꿈을 억지로 만들어 내라 할 수도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먹고 살기 바쁜 아이들에게 이제 꿈 좀 그만 물어 보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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