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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Sep 16. 2019

[다낭소리] 우울하다 우울해

우울하다 우울해

 시장에서 아주머니가 직접 하나하나 골라 준 망고스틴은 죄다 썩어서 먹을 수가 없고 인도엔 오토바이를 주차해 놔서 지나갈 수가 없다. 길 건널 때마다 차에 치일까 오토바이에 치일까 노심초사해야 되는 게 스트레스다. 


 다들 날 부러워하는데 정작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걸까. 지원 시기를 늦춰 다른 나라에 갔더라면, 오토바이 사고가 안 났더라면, 그랬다면 좀 더 행복했을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감정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가 어려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요즘 들어 이상한 꿈을 꾼다. 몇 번이고 토하는 꿈을 꾸질 않나 갑자기 위협 당하는 꿈을 꾸질 않나. 어제는 가족들이 다낭에 놀러왔는데 내가 공항에서 시내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몰라 쩔쩔매는 꿈까지 꿨다. 꿈속에서 맛집이라고 찾아간 식당은 맛이 없었고 골목을 걷다 이상한 할머니에게 위협 당하기도 했다.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할머니가 칼로 가족을 공격하려는 순간 그 팔을 꽉 물어 버렸다. 온 힘을 다해 깨무는 통에 꿈에서 깼다. 일어나니 이가 아팠다. 


 5년 전 페루로 교환 학생 갔을 때도 이와 비슷한 꿈을 꿨다. 홈스테이를 시작한 지 이주쯤 지났을 때였나? 난리 통에 친구와 가족들을 데리고 피신하는 꿈을 꿨다. 배경은 한국 전쟁이었는데 꿈속에서는 스페인어를 사용했었다. 노인을 괴롭히는 악질의 청년을 만나 발차기로 혼쭐내는 꿈을 꾸기도 했다. 난데없이 발차기가 등장한 것은 그때쯤 열심히 참석하던 태권도 동아리의 영항이 아닌가 싶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물갈이도 하지 않고 현지어에 대한 큰 스트레스 없이 잘 지내는 편이다. 언어를 마스터해야겠다는 부담감도 없고 하루 속히 적응하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이 시간을 나에게 주는 휴식으로 여기며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내가 스트레스 받고 있었나 보다. 무엇에 대한 그리고 어디로부터 오는 긴장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변화를 싫어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타지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나? 귀마개가 필요하다. 낮에 못 내는 스피드를 한밤중에 즐기는 건지 밤마다 요란한 소리가 난다. 거기다 옆 건물 클럽의 음악소리까지 아주 요란이다. 한국에서는 역세권에 살아 밤마다 전철 소리가 들려도 잘 잤었는데. 내가 왜 이렇게까지 예민해졌나 싶다. 


 그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코이카 사무소에서 책을 빌려왔다. 외출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많아졌다는 사실만큼은 감사하다. 책을 읽다 보니 그 요동치던 마음이 잠잠해진다. 감정은 한 순간이라 잠깐만 견디면 되는데 왜 그렇게 혼자 오버하고 앞서 나갔는지 모르겠다. 그래, 그래도 내가 여기 왔으니 이렇게 책 읽을 시간이 나지. 외출이 싫으면 책이라도 많이 읽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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