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낭소리 Sep 16. 2019

[다낭소리] 내 영혼을 위한 쌀국수

 내 영혼을 위한 쌀국수

 어릴 때 재미나게 읽은 책이 있다. 가슴 따뜻해지는 실화를 모아 엮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미국에선 아플 때 닭고기 수프를 먹는다는데 과연 내게는 어떤 음식이 그러한지 생각해 보곤 했다. 


 베트남에서는 쌀국수를 자주 먹는다. 동기가 좋아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사실 이만큼 찾기 쉽고 먹기 간단한 음식도 없으니까. 굳이 멀리까지 나가지 않아도 사방이 쌀 국숫집이다. 먹고 싶은 면과 고기 부위만 선택하면 어디든 국물 맛은 비슷했다. 뼈를 우려내 진한 국물에 파와 고수를 송송 썰어 넣고 숙주와 라임 즙을 더해 먹는다. 우리는 맵다 매워하면서도 늘 얇게 썬 고추를 넣어 먹었다. 따끈한 국물을 한두 번 떠먹은 뒤에 얇게 저민 고기로 면발을 싸서 먹는다. 그럼 혀나 입천장이 덴다. 그래도 좋다. ‘아 뜨거워’를 연발하다가 시원한 차 한 잔 들이켜고 다시 후후 불어가며 먹는다. 


고수가 듬뿍 든 쌀국수. 뜨거운 국물에 생고기를 얹어서 바로 익혀 먹는다.
고기 완자를 넣은 쌀국수. 기호에 따라 숙주, 향채, 라임, 고추를 넣어 먹는다. 
닭고기 쌀국수. 베트남 쌀국수 특유의 꼬릿꼬릿한 향이 나지 않는다. 

 베트남 음식을 소개한 책에서처럼 한 입 먹으면 감탄이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맛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어딜 가든 미원을 좀 넣고 안 넣고의 차이지 맛은 보통 이상이고 값도 저렴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쌀국수를 먹었다. 현지어 수업이 너무 힘들어 딱 지쳤을 때, 에어컨 없는 버스로 왕복 8시간을 달린 뒤 ‘뭐 좀 먹었으면 좋겠다.’ 싶었을 때도 쌀국수를 먹었다. 


 뜨끈한 국물에 고추를 넣고 한 숟갈 떠먹으면 그제야 베트남이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싫던 감정이 조금쯤은 풀리곤 했다. ‘그래도 여기 사니까 이런 걸 먹어 보지. 어딜 가나 미운 구석도 있고 예쁜 면도 있는 거지.’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때때로 베트남이 싫어질 때면 나는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작가의 이전글 [다낭소리] 다시 호치민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