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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Sep 16. 2019

[다낭소리] 다시 호치민으로

 다시 호치민으로

 베트남어를 가르쳐주시는 현지 선생님께 식사 초대를 받았다. 점심시간에 맞춰 여유롭게 가려고 했는데 10시쯤 ‘출발했어?’하는 문자가 도착했다. 혹시나 싶어 어제 몇 번이나 시간을 물어봤었는데 점심시간 아무 때나 괜찮다는 말에 정확한 약속 시간을 정하지 않은 게 실수였다. 같이 점심 먹자는 말에 나는 12시에서 1시 사이를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일찍 일어나는 베트남 사람답게 더 이른 시간을 예상하셨나 보다.


 원래 오늘 베트남에서 처음 버스 타는 기쁨을 맛보려고 했으나 시간 관계상 오토바이 택시를 불렀다. 너무 급해서 한 선택이지만 과연 내가 이걸 타고 이십 여분을 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그래도 다낭에서 몇 번 학생 뒤에 타봤던 게 다행이지 싶다. 처음엔 너무 무서워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게 더 불안해서 깜작깜작 눈을 뜨다가 하늘을 보다가 다시 눈을 감곤 했다.  


 오늘은 어쩔 수 없다. 길이 많이 막히는 호치민에서는 자동차보다 오토바이가 더 빠르다. 기사님이 건네주는 헬멧을 쓰고 뒤에 올라탔다. 이제는 허리가 아니라 오토바이 뒷부분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탄다. 호치민의 따가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생각보다 빠른 오토바이 속도에 실눈을 떴다 감았다 반복하며 선글라스 두고 온 것을 후회했다. 


 선생님 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멀었다. 높은 건물이 늘어선 호치민 시내 중심가를 지나 한참을 달리니 처음 보는 풍경이 나왔다. 낮은 건물과 길가에 너저분하게 늘어진 쓰레기. 도로 곳곳이 움푹 파여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평소 밤이 아니면 잘 볼 수 없었던 거리의 노점상도 여럿 눈에 들어왔다. 에그 타르트, 슈크림 볼 등 내가 좋아하는 빵을 진열해놓은 가판대, 뭔가를 잔뜩 튀겨서 담아놓는 풍경, 색색깔의 음료수를 늘어놓은 것까지. 좀 더 동네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빠르게 지나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사랑했던 나라를 떠올렸다. 페루에 다녀온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나는 여전히 그 나라를 그리워한다. 생각해보면 맛있는 음식도 별로 없었고 지금에 비하면 물가도 너무 비쌌다. 눈을 마주치면 인사를 하기보다는 추파를 던지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마음에 벽을 쌓았고 한편으론 그들을 무시하거나 경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페루를 사랑하는 것은 그곳에서 만난 나의 친구들, 그들로 인해 맺어진 인연 때문이다. 1년을 지내며 나름대로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멋진 풍경도 보았다. 하지만 내가 그리워하는 건  친구와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나눈 대화, 여행 중 묵은 싸구려 숙소에서 덜덜 떨며 연애 상담을 해주던 일들이다. 


 스쳐 지나가는 베트남의 풍경은 페루와 비슷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비슷한 풍경에 다른 기분이 들다니… 나는 베트남에 온 지 어언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 이 나라에 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볼 일이 끝나면 후다닥 집으로 돌아갔다. 수업이 끝나면 지쳐서 주말이면 여유롭게 쉬고 싶어서. 문을 열고 밖에 나가기보다는 방에 콕 틀어 박혀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질질 짰다. 늦잠을 자고 낮잠을 자는 것이 생활 패턴이었다. 


 한국에 살면서도 한국이 싫을 때가 있는데 낯선 타국은 오죽할까. 미운 감정이 시시때때로 든다. 뭐 대단한 일이 생겨서도 아니고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인도에 주차된 오토바이가 왜 이렇게 많은지, 초록불인데 달려오는 저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브레이크 한 번 밟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빵빵 거리는지, 식당 점원은 또 왜 이렇게 불친절한지, 뭔 놈의 거리에 이렇게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지, 도대체 음식물 쓰레기를 왜 아무 데나 버리는지, 사람들은 밤에 잠도 안 자는지, 어디서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지, 노래방 기계를 집에 갖다 놓고 사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부류인 건지…. 이런 소소한 것들이 쌓여 짜증이 된다. 그럼 이 나라가 싫어지고,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그 몇몇 사람이 이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여태껏 정을 못 붙였나 보다. 사고 한 번 겪고 나자 마음이 싹 닫혀 버렸다. 그 사건 이후로 오토바이는 늘 무섭고 불쾌하게 느껴졌다. 길을 걷다 인도로 불쑥 올라오는 오토바이를 보면 욕이 나왔고, 옆에 서 있는 경찰은 저런 사람 안 잡고 뭐하나 싶어 열불이 났다. 오죽하면 혼자 길 건너는 게 무서워서 점심시간 내내 허기를 참다가 수업 끝나자마자 택시를 타고 식당으로 가기도 했고, 오토바이가 넘실대는 도로를 건너기 싫어서 비싼 돈 주고 매번 한식을 사 먹기도 했다. 밖은 너무 위험하게 느껴졌고 언제나 안전한 숙소에만 머물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예민한 사람이었나 싶다. 낯선 내 모습에 놀라면서도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사람마다 못 견디게 싫은 한두 가지는 있는 것이고 현재 나에겐 그게 오토바이 부대였으니까. 하지만 누구에게든 ‘절대 싫은 것’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언젠가는 이 오토바이도 내게 애증의 대상이 되고 또 언젠가는 ‘싫지만 참을 만한 것’이 되어 추억의 한편을 차지하겠지. 억지로 그 시간을 앞당기지는 않으련다.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별의별 생각이 스쳐가는 동안 배가 당기는 게 느껴졌다. 복통이 아니라 이소라 다이어트를 20분은 한 것 마냥 속 근육부터 짱짱하게 당겨왔다. 뭐지 싶어 자세를 확인하니 떨어지지 않으려고 양 팔을 뒤로해서 손잡이를 꽉 잡은 것부터 지나가는 오토바이가 팔꿈치를 칠까 봐 팔을 일자로 쭉 뻗은 것까지. 완벽한 운동 자세였다. 게다가 나는 어깨와 허리를 뒤로 과하게 젖히고 있었는데, 체감 상 라이더 급으로 빠르게 달리는 이 기사님이 혹시나 앞 차와 부딪칠까 싶어 속도를 줄여 보고자 하는 나의 몸부림이었다. 기사님께는 죄송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몸을 조금만 숙여도 앞에 가는 오토바이가 가깝게 느껴져 얼른 몸을 뒤로 젖혔다. 


 이제 그만 내렸으면 싶은데도 오토바이는 멈추지 않았다. 이미 팔이며 배, 허벅지, 엉덩이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토바이도 오래 타면 궁둥이가 아프다는 걸 경험했다. 지친 상태로 한참을 더 가자 선생님 댁에 도착했다. 주택인 줄 알았던 선생님 댁이 번쩍번쩍 아파트라 동 찾는 데만 해도 한참 걸렸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요금이 얼마인지 확인할 정신도 없었다. 


 지갑을 찾아 돈을 드리려는데 이미 결제되었다고 하는 게 아닌가! 순간 선생님이 대신 내주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리가 없다. 내가 부른 택시를 누구인 줄 알고. 다시 확인하니 내 카드로 선결제한 것이었다. 지난번 다낭에서도 이런 적이 있었다. 그때 만난 택시 기사님은 아무 말 없이 쓱 받아갔었는데…!  


 같은 실수를 반복한 나도 어이없지만 양심적으로 내게 알려 주신 기사님께 감사했다. 오늘 이 일로 나는 당분간 베트남의 오토바이 운전수를 존경하는 동시에 아주 조금은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짜조 만들기: 1) 라이스페이퍼에 당면, 야채, 고기 다진 것을 넣고 돌돌 만다. 
짜조 만들기: 2) 기름에 바싹 튀긴다. 
완성!  *라이스페이퍼 종류에 따라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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