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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Sep 16. 2019

[다낭소리] 리틀 시티

 리틀 시티

 새소리 대신 공사판의 망치질 소리가 들리는 이 곳. 다낭. 내가 꿈꿔 온 임지의 모습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정감 간다. 나를 위해 정성껏 상을 차리고 음식의 맛을 음미하며 소박하게 살아보고 싶다. 


 베트남에 이렇게 인터넷이 잘 보급된 줄 몰랐던 때에 나는 외장하드 가득 영화를 담아 왔다. 그때는 출국하면 문화생활을 영 못하게 될 줄 알았었다. 그중 「리틀 포레스트」 일본판이 있었다. 도시 생활에 지친 주인공이 고향에 내려와 정성스레 농사짓고 밥해 먹으며 사는 얘기다. 실제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짓는 분들은 매 끼니마다 그렇게 정성스레 차려 먹을 시간적 여유도 없을뿐더러 다양한 메뉴를 상에 올리지도 못할 테다. 하지만 영화 속 우리의 주인공은 사시사철 산에서 밤도 주워다가, 개울가에서 풀도 뜯어다가, 길가에 드리운 나무에서 열매도 따다가 밥이고 간식이고 맛있게 차려 먹는다. 그 모습을 보며 아주 오래간만에 대리만족을 했다. 


 두 달간 주방 없는 호치민 숙소에서 지내며 나는 부쩍 요리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날마다 하는 외식에 질려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요리 동영상을 찾아보며 다낭에 가면 무얼 해먹을지 목록을 만들어 두곤 했다. 그리고 다낭에 집을 구하자마자 짐 풀기도 전에 마트로 달려갔다. 각양 가재도구며 식재료를 사 들고 오던 날의 기쁨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다낭은 포레스트보다는 시티에 더 가깝다. 오토바이가 넘쳐나고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다. 그래도 주민들 스스로가 좋은 도시라고 자부할 만큼 평화롭고 하노이나 호치민에 비해 아담하기는 하다. 딱히 쇼핑이나 카페 탐방에 별 흥미가 없으니 앞으로 이곳에서 뭘 하며 지내야 하나 생각했었는데. 나의 리틀 시티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즐거움이나 담뿍 누리다 가야겠다.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 아니 리틀 시티를 찍어보자고 다짐한다.


다낭은 확실한 도시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번화한.
강 주변에는 호텔이 즐비하다. 오른편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강 이편에는 현지인이, 저편에는 관광객과 외국인이 주로 거주한다.


 타향살이의 즐거움

 다낭에 온 지 4일째. 하루하루가 즐겁다. 아침이 오는 게 기다려지고 ‘내일은 뭐 해 먹지?’하는 행복한 고민으로 잠자리에 든다. 내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큰 안정감을 준다. 매일 정성 들여 한 끼를 지어먹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나는 요리를 아주 정성스레 하는 편은 아니지만 요리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도마 위에 각종 채소를 써는 것도 좋고,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채소를 넣으면 나는 차르르 하는 소리, 끓는 냄비 속의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동기 단원들 역시 각자 삶의 터전에서 열심히 지지고 볶으며 삼시 세 끼를 마련하는 중이다. 아프리카에서 보리 싹을 틔워 식혜를 만들고 태국에서 중국산 배추와 파파야로 김치를 담그면서. 동기 채팅방에는 잘들 지내시냐는 인사와 함께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공유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특히 연세 많으신 남자 선생님들은 생애 첫 요리의 맛이 꽤 괜찮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시는 듯 자주 사진을 올리셨다. 다들 재밌게 지내시는구나 싶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뚝딱뚝딱 치킨도 튀겨내고 제육볶음도 해내는 동기들에 비해 내 식단은 간소하다. 아삭 거리는 채소가 먹고 싶어 당근, 무, 양파를 사다 식초 부어 야채 절임을 만들고 호치민에서부터 그렇게 먹고 싶었던 카레도 한 대접 끓여 먹었다. 날이 추워지면 양배추 삶아 밥을 싸 먹고 남은 국물에 된장과 파를 넣어 국을 끓인다. 귀찮으면 계란 프라이 두어 개 부쳐서 참기름 쫄쫄 붓고 고추장에 비벼먹기. 요즘 꽂힌 건 마늘 파스타.


 베트남의 마늘은 한국 마늘보다 알이 더 잘다. 이걸 하나하나 살펴보자니 눈도 아프고 맵고 손끝이 아렸다. 무엇보다 불편한 건 계속 숙이고 있느라 뻐근한 목. 한국에서처럼 TV보며 마늘 깔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그랬다가는 마늘이 아니라 살 껍질을 벗겨낼 판이니까. 그래도 나는 주방이 생겼다는 것에 감격하며 열심히 마늘을 까고 감자를 썰었다. 마늘 까는 데만 하루 반나절이 걸린다는 건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한 번 해 먹고 반한 마늘 파스타를 요리하기 위해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교육 중 ‘코이카 단원의 하루는 먹을 음식을 장만하다 지나간다.’라는 말을 들었었다. 이제야 그 말이 와 닿는다. 장 봐서 재료 손질하고 밥 먹고 설거지 두어 번 하고 나면 그새 하루가 저물었다. 신기한 건 그렇게 보낸 하루가 아깝지 않다는 거였다.      



 그로부터 3주 후

 나는 내 공간이 생기면 늘상 음식 만드는 재미에 빠져 살 줄 알았다. 내가 나를 너무도 몰랐었다. 

 수업을 맡은 지 2주째. 부임 초 열심히 요리해 먹던 기억이 까마득하다. 이제는 집들이하고 남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왕창 사다 놓은 야채가 상할까 봐 서둘러 먹어 치우기 급급하다. 라면으로 하루 종일 때우기도 한다. 조금 피곤하니 바로 손 놓는 게 주방 일이다.  


 서랍장 한편에 모아 두고 안 쓰는 재료가 너무 많다. 욕심내서 산 튀김가루, 몇 번 먹다 질려서 구석에 처박아 둔 파스타, 아직 뜯지 않은 명절 격려품까지. 어림잡아 봐도 거의 한 달치 먹을 식량은 된다. 비우고 살자고, 욕심내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해놓고도 마트만 가면 한 두 개씩 집어오니 줄지는 않고 이렇게 쌓이기만 한다.


 베트남에 코코넛 오일이 유명하다기에 궁금해서 샀는데 식재료라기보다는 온도계 대신이다. 코코넛 오일은 25도 이하만 되면 하얗게 굳어버리는 터라 우기가 시작된 이후 늘 딱딱하게 굳어 있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그대로 대기 중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해가 떴다. 녹아서 흐물거리는 코코넛 오일을 보고 날이 풀렸다는 걸 실감했다. 나도 밖에 나가서 광합성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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