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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Sep 21. 2019

[다낭소리] 집들이, 소통의 시작

 집들이소통의 시작 

  “다낭 날씨는 사람 기분 같아요.” 

 누군가 내게 다낭 날씨를 소개하며 한 말인데 그만큼 변덕이 심하다는 뜻이다. 오전에는 흐리다가 오후가 되면 화창하게 갠다. 나는 딱 마음에 든다. 오토바이를 타면 시원한 바람이 느껴져서 더 좋은 계절이다. 곧 있으면 비만 주구장창 쏟아지는 우기가 시작될 테지만 그 전까지 이럴 테다. 다낭의 우기는 호치민보다 몇 달 더 늦게 시작된다.  


 다낭에 온 지 3주가 지났다. 오늘은 짐정리를 마친 기념으로 학교 선생님들을 초대해 집들이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선생님들과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언어의 문제는 아니었다. 잔뜩 긴장해서 베트남어로 인사를 건넨 내게 모두들 한국어로 답한 OJT 이후 우리는 줄곧 한국어로 소통했다. 다만 학교에 오면 수업 준비 외에 다른 얘기를 하지 않는 선생님들에게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대부분 수업 시간에 맞춰서 학교에 왔다가 수업이 끝나면 집에 돌아갔고 점심을 집에 가서 먹는 문화라 더욱 어울릴 시간이 없기도 했다. 


 그러다 선생님 한 분이 내게 지금 사는 집이 어떠냐고 물어 보기에 한 번 오라고 얘기를 꺼냈다. 가볍게 그냥 와서 밥 먹고 가라는 의도였는데 “저만요? 아니면 다요?”하고 묻는 통에 이때다 싶어서 학과 선생님들을 다 초대했다. 고기 불판을 빌리고 날을 정해서 장 볼 계획까지. 며칠 동안 계속 집들이를 주제로 선생님들과 얘기하고 같이 어울리다 보니 한층 가까워졌다.


 그리고 오늘. 아침 7시부터 시험 감독을 하고 부랴부랴 마트에 갔다. 현지 선생님 한 분과 같이 장을 보러 갔는데 둘 다 요리는 일자무식이라 야채 사고 고기 고르는 데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떤 것을 얼마나 사야할지 몰라서 출장 중인 다른 선생님한테 물어보기까지 했다. 담았다 빼기를 반복하며 카트를 한가득 채웠다. 계산하니 우리 돈으로 약 7만원. 생활비의 10분의 1 가량 되는 거금이 나가버렸다. 너무 오버했나 싶지만 하는 김에 제대로 하고 싶었다. 


 문제는 이 짐을 오토바이에 실어야 하는데 양이 워낙 많아서 쉽지가 않았다. 운전하는 선생님이 앞에 타고 그 뒤에 짐 담은 박스를 세로로 올렸다. 그리고 상자가 떨어지지 않도록 뒤에 탄 내가 한 손으로는 상자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오토바이를 붙잡았다. 나름 안정적인 자세였지만 떨어지지 않으려고 꽤나 긴장했던지 집에 돌아오니 녹초가 되어 버렸다. 이제 시작인데 피곤함이 몰려와 집들이고 뭐고 다 무르고 싶었다. 


 잠시 쉬다 닭볶음탕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손질하고 끓이는데 이게 웬걸.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인덕션이 하나밖에 없어서 먼저 닭볶음탕을 끝내야 다른 음식을 준비할 수 있는데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갔다. 아쉬운 대로 야채 손질부터 하는데 중간 중간 맛 본 닭볶음탕이 내가 기대했던 맛이 아니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잡내 없애겠다고 커피를 넣었는데 대책 없이 너무 많이 부었나? 새카만 국물처럼 내 속도 탔다. 다시 물을 붓고 고춧가루를 들이 부으며 맛이 괜찮아지기를 기다리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서 일단 불을 끄고 다른 음식을 준비했다. 


 이제 겨우 요리 하나를 완성했고 아직도 썰어야 할 야채는 냉장고에 쌓여 있는데 약속된 시간이 다가 왔다. 정신없이 칼질을 하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받을 정신이 없어서 무시하려는데 이번에는 누가 방문을 두드려댔다. 설마하고 열어보니 코워커 선생님이 서 있었다. 바쁠 것 같아서 도와주러 왔다면서! 이렇게 고마울 수가! 


 선생님에게 얼른 야채 손질을 부탁하고 나는 부지런히 김밥을 말았다. 그러는 사이 다른 선생님도 도착했다. 다들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보통 외국인을 초대하면 한참 늦게 오던데 깜짝 놀랐다고 얘기하니 베트남에도 ‘베트남 시간’이라는 게 있어서 다들 좀 늦게 올 텐데 혼자 준비하기에는 바쁠 것 같아서 도와주러 왔다고 한다. 고마워라!


 복작복작 음식을 준비하는 사이에 하나 둘 씩 모양이 갖춰져 갔고, 한참 수다를 떨며 재료를 손질하다 가장 중요한 고기 불판을 학교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중 가장 어린 코워커 선생님이 학교에 들러 불판을 가져오고 고기도 두어 팩 더 사오기로 했다. 그러는 중에 다른 선생님들도 오셔서 같이 음식을 준비했다. 결국 약속 시간보다 삼십여 분 늦게 고기 파티가 시작되긴 했지만 불판 위에 삼겹살, 소고기, 버섯, 베트남 채소 등을 구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준비 재료
함께 준비한 집들이 음식


 사실 집들이라는 게 어디서 하든 워낙 돈도 시간도 많이 드는 일이라 할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우리 학과 선생님들이 좀처럼 모일 기회가 없을 것 같아 하기로 마음먹은 거였다. 이렇게 다 같이 모인 건 오랜만이라고 해서 자리를 마련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식을 먹고 나서 슬슬 정리하려는데 우리 젊은 세 여선생님들이 손을 걷고 도와주기 시작했다. 내가 할 테니 집에 가라고 해도 ‘혼자하면 오래 걸리지만 여럿이서 하면 15분’이라는 구체적인 말로 내 입을 막아버렸다. 내가 남은 음식을 비닐봉지에 담는 사이 설거지도 뚝딱. 쓰레기 정리에 바닥 청소까지 말끔히 끝내 버렸다. 


 마침 여선생님들이 내 방에 있는 체중계에 관심을 보이는지라 다들 한 번씩 올라가보았다. 우리 중 제일 마른 선생님은 저녁을 실컷 먹고도 50.4kg. 나머지는 거뜬히 50kg을 넘었다. 내가 이 방은 50kg 넘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으니 앞으로 50 밑으로 안 떨어지게 몸무게 관리하라고 장난치니 다들 맞장구친다. 나더러 이 말을 베트남어로 하라고 했으면 때맞춰 바로 나왔을까? 이런 말의 뉘앙스까지 바로 이해하고 맞받아칠 수 있다니… 새삼 우리 선생님들의 한국어 실력에 감탄하였다.


 공교롭게도 출장 중인 선생님까지 포함하여 현재 다낭외대 미혼 여자선생님들이 모두 남자친구가 없는지라 우리 방을 아지트 삼아 자주 모이기로 했다. 한 번 모이고 나니 모임이 계속 이어졌다. 거의 2,3주마다 한 번씩 모여서 같이 요리하고 수다를 떨곤 한다. 이제는 내가 초대하지 않아도 선생님들이 먼저 ‘연말인데 우리 뭐 없어요? 고기 파티할까요?’하며 날을 잡는다. 


 시작은 소소하게 라면, 떡볶이로 시작하다가도 막상 날을 잡고 나면 고기로 결정된다. 더운 날엔 창문 열고 고기, 추울 때는 샤부샤부, 매콤한 떡볶이와 어묵탕, 늘 빠지지 않는 과일까지. 뭐든 실컷 먹고 무의미하게 몸무게를 달아보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식사 후에 또 차를 마시다 보면 수다가 끊이지 않아서 귀가 독촉 전화가 올 때쯤 파한다. 

가벼운 식사 모임

 선생님들과 친해지니 학교에서도 더 많은 것을 함께하게 되었다. 후문 앞 식당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같이 하기도 하고 학과 사무실에서 점심을 시켜 먹기도 한다. 그간 학사 일정이며 중요한 사항을 제때 알 수 없어 답답하곤 했었는데 선생님들과 어울리다 보니 부러 물어 보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될 때가 많았다. 소소한 것이 쌓여 불만으로 이어지기 쉬운데 그 전에 이렇게 해결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함께하는 동료들 덕분에 학교가 조금 더 친숙한 공간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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