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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Sep 21. 2019

[다낭소리] 고향이 어디예요?

 고향이 어디예요

 학생들은 나의 고향을 궁금해 한다. 학생들이 주로 아는 도시는 서울과 인천, 부산, 제주도쯤이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 설명하기가 어렵다. 내가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으니 서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라고 하면 당황하거나 실망한 눈빛을 보이기도 한다. 서울 출신 아닌 것이 아쉬운 적 없었는데 베트남에 와서 때때로 난감함을 느낀다. 학생들이 궁금해 하는 서울 지리를 잘 모르거나 내 고향을 설명하기 어려울 때 조금 뻘쭘하다.


 나 역시도 그렇다. 베트남에 대해 하는 거라곤 큼직한 관광도시뿐이니 그 외 지역은 이름을 들어도 낯설고 더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친절한 학생들은 내가 모르는 눈치를 하면 큰 도시 이름을 대며 어디 옆에 있다고 덧붙여 설명해 준다. 그럼 그제야 아는 척을 하고 말을 이어간다. 그래도 대화하기 평이한 주제라 학생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고향을 묻게 되는데 얼마 전 이 질문 자체가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녁을 먹다 학생들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대부분은 ‘다낭, 하노이, 꽝남’하며 내가 알 만한 도시 이름을 댔다. 특히 수도인 하노이 출신들이 더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며 귀엽기도 했다. 그러다 한 학생이 자신의 고향은 하노이 근처 북쪽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다른 학생이 쭈뼛쭈뼛 응에안이라고 하자 방금 대답한 학생이 실은 자신도 응에안 출신이라고 얘기했다. 내가 모를까 싶어 이름을 대지 않은 걸까 아니면 고향이 응에안이기 때문에 말을 안 한 것일까. 


 북부 소도시 응에안. 호치민 주석의 고향이기도 한 이 곳은 농사 지을만한 형편이 안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타지로 간다. 그래서 가난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만난 남부 사람은 보통 베트남 사람들은 응에안 사람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척박한 곳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다 보니 사람들이 못되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맞다면 일부 사람들에게는 출신 지역 자체가 자격지심이 될 것이다. 오늘 학생들의 반응을 보며 내 생각이 짧았고 괜히 예민한 여학생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건 아닌가 싶어 반성을 했다. 

한국사람들이 베트남하면 떠올리는 이 모자(논) 또한 베트남 사람들은 잘 쓰지 않는다.  보통은 (거리에서 힘든 일을 하는)가난한 사람들만 쓴다고 한다. 관광객들과. 

 

 서로 비슷한 점이 많은 베트남과 한국. 큰 문화차이랄 것은 없지만 가끔 이렇게 작은 부분에서 주의할 것이 생긴다. 내가 아는 선에서 한국에는 딱히 ‘가난한 지역’이라고 대표할 만한 곳이 없다. 도시 아니면 시골 이 정도로 나뉘는데 반해 베트남은 지역 특성이 확실한 편이다. 


 북부는 전통을 중시하고 남부는 개방적 사고방식을 가졌으니 남부 며느리와 북부 시어머니는 최악의 조합이라고 말한다. 그 밖에도 하이퐁은 무서운 사람과 조폭이 많은 도시, 다낭은 사람들이 친절하고 살기 좋은 도시, 호치민은 도둑이 많으니 조심해야 할 도시로 정의하는 등 사람들의 인식 속에 ‘이 도시는 이러하다’라는 고정된 관념이 있는 듯하다. 자기 고장을 포장하기 위해 다른 지역을 깎아 내리는 것일 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북부 사람들은 앞뒤가 달라 조심해야 하지만 중부 사람들은 앞뒤가 똑같다고. 누구는 중남부 사람들이 게으르고 의뭉스러워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처럼 누군가 조장한 지역감정일까 아니면 오랜 세월의 경험으로 정리된 결과치일까. 베트남에 좀 더 살면서 사람들의 말이 일부는 맞고 틀리다는 것을 경험했다. 괜히 그런 말이 나온 게 아니라고 공감될 때도 있었고 한두 사람으로 인해 그간의 인식이 깨져버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이 한 지역이나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은 아니다. 내게는 나쁜 이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나는 잠시 잠깐 머물다 가는 사람일 뿐 나의 경험으로만 쉽사리 판단하고 평가할 수는 없다. 


 혹자는 응에안 사람이 나쁘다고 한다. 내가 만난 응에안 학생들은 우리 지역 사람들이 친절하고 남을 잘 도와준다고 말한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우리 학생들의 가족과 이웃만은 친절하고 착한 사람들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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