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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Sep 21. 2019

[다낭소리] 미스터 택시

 미스터 택시

 내가 오토바이 택시를 선호하는 이유는 기사님과 말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오토바이를 타더라도 말은 건다. 한국 사람인지, 베트남어를 할 수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베트남이 어떤지….  


  가장 고마운 운전수는 내게 말 걸지 않고 앞을 보며 똑바로 운전하는 사람이다. 나를 목적지에만 안전하게 데려다 주기만 하면 된다. 급해 죽겠는데 속도를 늦추고 내게 말 거는 사람들에게는 신경질이 난다. 질문하느라 앞으로 향해야 할 고개를 자꾸 뒤로 돌리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다 난다. ‘운전만 잘 하라고! 이러다 우리 둘 다 죽겠다고!’


 그들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것이 어디 한국 어른들은 안 그럴까 싶냐봐서다. 그들도 집에 돌아가면 누군가의 아비요 사랑스런 자식일 테니까. 어쩌면 내가 가르치는 학생의 아버지일 수도. 그러니 허허 웃으며 넘기거나 능글맞게 받아칠 수밖에 없다. 컨디션이 안 좋아 그마저도 도저히 나오지 않는 날에는, 한마디 답했다가는 뻔하게 이어질 말을 알기에 아예 베트남어를 모르는 척 해버린다. 


 나에게 베트남이 어떠냐고 물어보지 마라. 좋다고 하면 그 뒷말이 “그럼 베트남 남편은 어때?”하고 물어 오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니까. 


애증의 택시. 그래도 이렇게 한국 광고를 실은 택시를 보면 반갑고 신기했다.


 한때는 나도 택시 기사들과 대화하며 베트남어 실력을 키우는 것이 목표였다. 내 말을 알아듣고 내게 베트남어로 말하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꼈다. 대체 나는 언제부터 귀 닫고 입 닫게 되었을까. 


 처음엔 순수하게 다 알려 줬다. 하지만 미혼이라고 하면 베트남 남편을 권했고 결혼했다고 하면 베트남 남편을 따로 두라고 했다. 농담 따먹기도 한두 번이지 같은 얘기를 여러 사람에게 듣다 보면 지겹다. 나 잘생긴 사람 좋아하니까 그런 사람 골라서 소개시켜 달라하면 대답도 못 하면서. 


 다낭에 2년 정도 살 거라고 하면 번호를 물었다. 친구들이 놀러 오거나 관광지에 갈 때 연락 달라면서. 한국어 선생님이라고 하면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 했다. 얘기 나눠 보고 진심인 듯 보이는 사람들에게만 연락처를 알려 줬다. 하지만 그 후로는 연락 두절. 딱 한 명 전화 왔었는데 대뜸 지금 만나서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오늘은 약속이 있으니 추후 수업 날짜를 잡자’하고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연결되지 않았다. 


 몇 번 이런 일들을 겪고 나자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그 시간에 우리 학생들을 만나고 말지 싶어 누가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러다 끈질긴 택시 기사를 만났다. 한국어는 하나도 모르는데 반해 열정이 넘쳐 번역기를 붙들고 대화를 이어 가려 했다. 우리 집 앞에 다 왔는데도 내려 줄 생각 않고 말을 거는 모습에 질리기도 무섭기도 해서 일단 승낙했다. 그러자 대뜸 혼자 사냐고 묻는다.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 들어 친구와 같이 산다고 거짓말했다. 곧이어 자기는 한국어가 너무 배우고 싶으니 지금 내 방에 가서 배우면 안 되겠냐고 묻는다. 안 된다고 하니 왜 안 되느냐며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 


 6층 아파트먼트인 우리 집은 도로에서 창문이 보인다. 내 방을 비롯해 건물 전체의 불이 꺼져 있는 상황. 머리를 굴려 그럼 나중에 점심 먹으며 수업하자고 했다. 그건 싫단다. 그럼 저녁에 만나자 하니 자기는 일해야 돼서 밤에만 시간이 된단다. 아, 내가 또 미친놈을 만났구나 싶어 짜증이 났다. 


 나는 왜 택시에서 내리지 못하는가. 겁에 질리면 바보가 되나 보다. 순발력이 나오기는커녕 사고가 정지된 기분이었다. 뭐든 좋으니 일단 집에 가야할 것 같아서 택시 기사에게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그러자 손수 전화를 걸어 맞는 번호인지 확인까지 한다. 앞으로 차단하면 그만일 그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차에서 내렸다. 


 방에 올라와 불을 켜려다 순간 싸한 느낌이 들어 멈췄다. 커튼 너머로 창밖을 내다보니 나를 태웠던 택시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잘 들어갔냐는 문자가 왔다. 얼른 답장을 했다. 그래도 출발하지 않는다. 몇 층에 불이 들어오는지 지켜보려는 심산인 것 같아 불을 켜지 않고 기다렸다.


 어둠 속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며 멍청한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간 미련하다고 욕했던 공포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사과했다. 멍청이는 나였다. 그렇게 속고도 또 속다니….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렸다. 택시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불을 켰다. 다시는 내 신상을 털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택시 기사의 질문을 못 알아듣는 척 하게 된 건 이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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