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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Oct 15. 2019

[다낭소리] 학생들에게 주는 레시피

 학생들에게 주는 레시피

 여름방학 동아리는 여유가 있어 정규 수업 때보다 더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한다. 아이들의 감성을 건드려서 좋은 글이 무엇인지, 어떻게 써야하는지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매주 시나 수필, 웹툰을 준비해 간다. 


 가끔 공지영 작가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라는 책으로 공부할 때도 있다. 엄마가 딸에게 쓰는 편지 형식이라 구어체 표현도 많이 나오고 일상생활을 주제로 대화할 거리가 많아서 좋다. 이 책을 고른 또 다른 이유는 ‘간단한 요리법’을 소개한다는 데 있다. 독립해서 자취하는 딸에서 뚝딱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아주 쉽게, 친절히 설명하고 있으니 하숙집에 사는 우리 학생들에게는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에 나온 요리를 다 소개하고 싶지만 일단 해 먹기 쉬운 메뉴를 고른다. 베트남에서 재료 구하기 어려운 건 빼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탈락. 몇몇 메뉴는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따로 소개하기도 한다. 오늘의 메뉴는 ‘자신이 초라해 보이는 날에 먹는 시금치 샐러드’, 갑자기 우울하고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날 저자가 딸에게 시금치 샐러드를 추천해 준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경험담과 함께 추천 음식을 소개했다. 한 학생이 집에서 떡볶이를 만들어 먹는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요리법을 들어 보니 파기름도 내고 마늘도 넣어서 나보다 더 제대로 해 먹는다. 누가 누굴 가르치는 건지, 이대로 요리 실습을 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수업을 마무리하며 요리 실습 날짜를 잡는데 ‘오늘 해요!’하는 말이 나왔다. 방바닥에 굴러다닐 머리카락과 미처 정리하지 못한 옷가지가 생각났지만 생글생글 웃으며 괜찮다는 학생들 말에 꼼짝없이 마트로 향했다. 아니 얘들아… 너희가 아니라 내가 안 괜찮다고. 시장에서 장을 보는 게 훨씬 저렴하기는 하지만 여유 있게 장보며 식료품 이름을 한국어로 공부할 생각에 카트를 끌었다. 이 더운 날 학교에 나와 고생한 아이들에게 에어컨 바람을 좀 쐬어 주고 싶기도 했고. 


 원래는 시금치 샐러드에 간단히 빵을 곁들여 먹을 생각이었지만 내게 베트남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아이들 말에 이것저것 재료를 더 담았다. 카트 끄는 걸 신기해하고 서로 사진을 찍어 주는 아이들 덕에 웃음이 났다. 구경과 체험을 위해서라도 학생들과 장 볼 때는 마트로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 동아리에 나온 학생은 두 명. 서로 룸메이트이자 단짝인 이 아이들은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하는 건지 뭐든 척척이다. 재료를 펼쳐 놓더니 순식간에 기적을 만들어 냈다. 여주에 고기와 버섯으로 속을 채워 끓인 쌉쌀한 국, 라이스페이퍼에 다진 고기, 버섯, 면을 넣고 만두처럼 접어 기름에 튀긴 것까지 한 상 가득 푸짐히 차려졌다. 라이스페이퍼 튀김은 하노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했다는 식당, 호치민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방문했다는 곳에서도 먹어 봤지만 지금 우리 집 식탁 위에 올라 온 것이 최고였다! 


 그에 비해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대실패. 감히 베트남 시금치 탓을 해보려 한다. 시금치 샐러드는 싱싱한 시금치를 씻어 그 위에 올리브 오일과 체다 치즈를 올리면 완성된다. 하지만 베트남 시금치는 잎이 두껍고 너무나도 컸다. 내가 생각했던 조그맣고 연한 시금치가 없어 그나마 작은 걸로 골라온 것인데 생으로 먹으려니 쓰고 식감이 좋지 않았다. 만약 고집 부려서 나 혼자 요리했더라면 먹을 게 없을 뻔 했다. 


 신나게 먹고 놀다 보니 또 음악이 빠질 수 없어서 노래를 틀었다. 서로 좋아하는 베트남 노래를 틀고 남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한참 감정 이입을 했다. 학생들은 베트남 노래를 잘 아는 내가 신기한가 보다. 흐름이 또 그렇게 되어 짬짬이 베트남어로 대화했다. 몇 마디 안 해도 발음이 좋다느니 대단하다느니 하며 치켜세운다. 물론 어떤 외국인이 ‘오와우. 김취 징챠 뫄쉬쒀여!’해도 잘한다 잘한다 하는 딱 그 수준이겠지만, 칭찬을 들으니 괜히 베트남어를 더 잘하고 싶어진다. 학생들 마음도 나와 같겠지? 그러니 칭찬을 더 해주자, 자꾸자꾸 기를 세워주자! 


 야심차게 강의를 준비해도 놀자고 판을 벌려도 나는 늘 배우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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