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를 강요받는 시대에 엄마로 산다는 것

by 디어살랑

며칠 전 샤워하고 밖에 나와서 물기를 닦고 있는데 남편이 내 남산 같은 배를 보더니, "베비, 지금 이 모습 너무 아름답다!"라고 했다. '어머나~ 정말? 기분 좋아~'라고 했었어야 하나 싶지만 내 반응은 떨떠름했다. "이게 아름답다고..?" 거울 속 비친 내 모습은 영락없는 임산부의 푸근한 D라인이었다. 배는 나올 대로 나와서 허리는 활처럼 휘어가고 있고 배에서 허벅지까지 치즈볼이 연상될 만큼 둥글둥글한, 내 인생에서 보지 못했던 모습. 하지만 우리 부부 둘의 역사적 산물(?)을 품고 있는 내가 남편 눈에는 남다르게 보일 수 있겠다 싶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 피드를 구경하다가 비키니 입은 한 해외여성분을 보게 되었다. 애 셋을 낳았고 심한 튼살 때문인지 정말 배가 쭈글쭈글했는데, 댓글에는 전부 너무 멋지다, 너 자신을 자랑스러워해라, 평생 간직 할 소중한 모습이다,라고 찬양하고 난리가 났는데 난 속으로 보자마자 '징그럽다...'라고 생각했다. 정말 나만 이렇게 생각한다고? 세상이 날 상대로 몰래카메라 하나...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저렇게 배가 팽팽해지고 줄어들고 반복하면서 긴 시간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름다운 징표라기보다는 이렇게까지 나 자신을 희생하며 아이를 품었다, 로 보이는 치열한 흔적처럼 보였다.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엄마에게 모성애는 당연한 거고 임신, 출산은 성스럽고 고귀한 것이라고 철저하게 포장되어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을 보기 싫어하거나,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정말 천하의 몹쓸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다. Love yourself 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이런 문화가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임신과 출산은 흔히들 축복이라며 각종 미디어에서는 온화하고 밝은 기운을 뿜어내지만 그 속엔 변기통을 부여잡고 웩웩 대는 입덧이나 임신소양증 때문에 밤새 피부를 긁어 피딱지가 앉은 장면은 쏙 빠져있다. 내가 보기에 임신은 내 아기를 지키기 위해 열 달 동안 참아낸 엄마의 필사적인 흔적이다.


이 모성애에 대한 강요는 아기를 낳아도 계속 연결되는데 바로 모유라이팅이 대표적이다. 모유라이팅은 산모의 몸상태는 고려하지 않고 모유를 먹이는 게 무조건 아기에게 좋다며 가스라이팅 하는 것을 말하는 신종용어다. 특히 조리원에서 많이 생긴다는데, 여러 이유로 모유수유를 더 이상 못하겠다는 산모에게 '아기가 엄마한테 서운하겠다~' '엄마가 좀 더 노력해 보지.' 하면서 안 그래도 힘든 산모들을 더 우울하게 만든다고 한다. 이 모유라이팅이 아마 아기가 태어나고 가장 바로 겪는 모성애에 대한 강요라면 그 이후에도 '엄마가 돼서 어떻게 그래.' '엄마는 그러면 안 되지.' 등의 수많은 말들을 들으며 살아갈 것이다.


임신기간 아기를 나 혼자 오롯이 품으면서 아빠보다는 아기와 한 발짝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나, 그렇다고 모성애가 뿅-하고 나오진 않는다. 나는 그저 이 모든 과정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아이가 갖고 싶어, 근데 임신은 나만 할 수 있어. 출산도 나만 할 수 있네? 그럼 내가 해야지 방법이 없잖아. 이렇게 인류가 몇천 년 동안 쌓아온 인체시스템을 거스를 수 없으니 받아들였을 뿐, 지금도 미래에는 인공자궁이 개발되어서 수많은 여성이 임신, 출산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면 하는 쪽이다.


나에게 모성애는 철저하게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남편과 내가 동의해서 한 아이를 만들어냈으니, 그 아이가 클 때까지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책임지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가족 모두 행복을 느끼는 것. 그거면 된다. 물론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아이에 대한 직감을 모성애의 발동이라고 불러도 좋다. 하지만 절대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엄마를 옥죄어 오거나 죄책감을 유발하는 건 옳지 않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완벽한 엄마보다 ‘나다운 엄마’가 되기로 한다. 모성애가 아니라, 나의 선택과 책임으로 아이를 사랑하며 살아가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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