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누구랑 이야기하고 있니?
지연된 대답
문자를 보내거나 TV를 볼 때면 아내는 내 이야기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짧은 기다림의 시간을 참지 못하고 그렇게 투덜대지만 나 역시 그럴 경우가 많아서 크게 항변하지 못한다. 우리는 누군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를 바란다. 스마트 시대의 편리함 속에 경청의 에티켓은 사라지고 있다.
경청이 사라진 시대
잘 듣는다는 것은 관심을 실천하는 것이고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조직의 리더는 읽는 데 1시간을 할애한다면, 대화에는 2시간을, 듣는 것에는 8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읽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말하는 법에는 그나마 약간의 시간이 안배되지만 대체로 듣는 법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다.
경청은 사랑이다
사랑은 관심을 낳는다. 자신을 사랑할 때 자기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타인을 사랑하게 되면 그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양육 과정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이러한 과정을 체득하게 한다. 이제 제법 말로 자기의사를 피력하는 여섯 살 아이를 보자. 부모는 아이의 말을 막을 수도 있고 적당히 듣는 척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심으로 경청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조잘대는 이야기를 집중해 들어주려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경청의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요령으로 자녀에게 경청의 묘를 발휘해야 하는 이유는 자아 존중감을 통해 자신이 소중하다고 느끼도록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소중하게 받아들여질수록 소중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위대한 지혜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 나온다는 격언처럼 부모들은 자녀와의 대화에서 귀한 통찰을 얻기도 한다. 아이는 대화를 통해 부모에 대한 순종과 존경을 배우게 된다.
스마트 실어증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경청의 모범을 잘 못 보여주었다. 대화중에도 스마트폰을 들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이젠 그대로 되돌려 받고 있다. 이따금 내 이야기에 지체된 답변을 하는 것은 아내만이 아니다. 아이들도 어느새 ‘스마트 실어증’을 보여준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나는 이따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대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확인할 뿐이다.
존중의 시작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말이다. 함께 있는 동안 집중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그는 휴대폰을 꺼서 가방에 넣어 두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업으로 바쁘다는 것을 알기에 그의 작은 행동은 내게 존중받는 느낌을 주었다. 상대에 대한 존중은 말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님을 다시 새겨보게 되었다. 이 시대의 존중은 같이 있는 동안 스마트폰을 꺼두는데서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