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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코치 May 01. 2019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북리뷰

남자는 여자의 목덜미를 붙들고 있었다. 대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얼굴은 상기된 채로 였다. "여보 이것 좀 놓고 내 말 좀 들어봐요"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상기되어 여자를 끌고 작은 한옥 마당을 가로질러 자신들의 셋방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험한 욕설과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어디서 어떤 놈 만나고 왔어?"

"이 앞에 시장에 다녀왔어요"

"바른대로 말해"

"정말이에요. 악.. 믿어줘요. 아.. 여보 때리지 말아요. 잘못했어요"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전화는 있었다. 남자는 직장에서도 집으로 수시로 전화를 걸었다. 의처증이었다. 여자는 대문 밖을 좀처럼 나서지 못했다. 그가 건 전화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날은 남편이 건 전화를 몇 통 미처 못 받은 게 화근이 되었다. 남자는 조퇴를 하고 득달같이 집으로 달려왔다. 집에 있으면서 남편의 전화를 받고 나서 시장에 금방 다녀온다고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남편에게 붙들려 들어와 사단이 벌어졌다. 한 시간 가량 분풀이가 이어진 뒤 잠잠해지고 나면 남자는 여자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어쩔 줄을 몰라한다. 여자는 괜찮다고 하며, 다시 회사로 나서는 남자를  배웅한다.  여자의 몸에는 혁대로 무차별적으로 맞은 피멍 자국이 남았다. 눈가의 멍자국은 눈물로 젖어 부풀어 올랐다. 주인아저씨는 나중에 문간방 남자를 불어 집을 비우라고 말했다. 이미 두 달 전에.  아주머니는 남자가 나간 뒤 여자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혀를 차곤 했다. 그럴 때마다 새댁은 자기를 너무 사랑해서 그렇다는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했다. 그런 소동이 벌어지고 나면 남자는 여자를 며칠 동안 극진히 대해준다. 퇴근길에 선물공세는 물론 잉꼬부부처럼 다정하게 손잡고 외식을 다녀오기도 했다. 얼굴에 멍자국은 그대로인 채로. 여자는 남자의 그런 행동이 정말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레이먼드 카버는 어릴 적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상기시켰다. 테리는 전 남편의 폭력적 행동을 사랑이라고 확신했다. 의처증 남편의 폭력적 행동을 사랑이라고 말했던 건넌방 새댁의 멍든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가 사랑에 대해 정말 알고 있는 게 뭘까? 사랑에서 우리는 초보자일 뿐인 것 같아.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서로 사랑하기도 하지. 그 점은 의심치 않아. 나는 테리를 사랑하고 테리는 나를 사랑하지. 그리고 당신들 역시 서로 사랑하고 지금 내가 얘기하는 종류의 사랑이 뭔지는 알 거야. 육체적인 사랑, 특별한 누군가에게 이끌리는 충동. 그리고 다른 어떤 존재. 상대의 본질에 대한 사랑 말이야. 세속적 사랑,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 대해 일상적으로 배려하는 감상적인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214p)
그런데 끔찍한 건, 정말 끔찍한 건, 한편으로는 좋기도 한 건데, 우리를 구원할 어떤 은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건, 만약 우리 중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내일 우리 중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상대, 그러니까 다른 한쪽은 한동안 슬퍼하다가도 다시 기운을 차리고 곧 다른 누군가를 만나 다시 사랑을 하게 될 거라는 거야. (216p)


레이먼드 카버는 작가들에게 인기 있는 작가다.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로 칭송될 정도로 20세기 후반 미국 문학의 거장으로 꼽힌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카버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노라고 그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극찬했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1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풋내기들'이 원작이다. 두 책은 같은 책이면서 다른 책이다. 출간 과정에서 카버의 원고가 편집자 고든 리시에 의해 상당 부분이 편집되었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작가로서 카버를 널리 알려지게 했다. 카버가 죽은 후 그의 두 번째 부인에 의해서 원작 '풋내기들'이 출간되었다.


마지막 편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는 네 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테리는 사랑에 대해 낭만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반면 그의 남편 멜은 현실적인 사람이다. 테리는 자신을 학대했던 전 남편이 자신을 진정 사랑했다고 이야기한다. 멜은 테리의 이야기를 반박한다. 테리와 멜의 이야기를 듣는 닉과 로라는 결혼 생활 18개월이다. 테리와 멜의 사랑에 대한 선험적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공감해보려 한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단편들은 등장인물들의 평범하면서 비루한 삶들을 그리고 있다.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카버의 삶에 비추어 보면, 소설 속 이야기는 비루한 나머지 우리의 삶이 가치 있게 느껴진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삶의 평범성은 그 자체로서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다. 카버는 그 평범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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