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때 처음으로 난감했던 숙제는 방학생활계획표를 만드는 과제였다. 목적도 모른 채 방학 중 매일 어떻게 생활할지를 커다란 표로 만들었다. ‘시간은 금이다’ 같은 격언을 맨 위에 큰 글씨로 적어두고 둥그런 케이크를 자르듯 24시간으로 표시된 커다란 원에 연필로 금을 그어 시간을 쪼갰다. 공공기관 확성기에서 이른 아침 새마을 운동 노래를 틀어주었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 어린 나도 방학의 긴 시간을 허투루 보내선 안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잠자기, 공부, 독서, 식사, 놀기.. 이런 요목들로 방학생활계획표를 나름 균형 있게 잘 채웠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 그 계획표를 제대로 지킨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삶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자신이 인생에서 원하는 바를 뚜렷하게 아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의 수만큼 통제할 수 있는 요인들도 많다. 시간이 갈수록 통제 가능한 것들보다 통제 불가능한 것들이 많아진다. 목표 성취를 위해서는 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우리 중 누구도 자신의 목표를 완벽하게 이루지 못한다. 다 그렇게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가 레이스를 마친다. 얼마나 더 멀리 도달했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전 광산촌은 타 지역에 비해 소비지수가 높았다. 인근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고급 브랜드의 상점들이 있기도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광산 사고에 언제든 삶을 마감할 수 있다는 현실은 그들로 하여금 내일을 위한 저축보다 오늘의 풍요로움을 선택하게 하였다. 그들의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다.
‘카르페디엠’은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삶에서 통제 가능한 요소들이 늘어나면서 이 말이 실체적으로 다가온다. ‘스트레스받지 말고 즐겁게 살아야 해 그게 답이야’라고 말했던 선배의 조언이 떠오른다.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버리지 못해요. 줄을 자르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겐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스러운 구멍가게 주인이지요.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오히려 더 붙잡아 맬 뿐이지.
그리스인 조르바가 주인공에게 했던 말처럼 우리는 여전히 통제 가능한 혹은 통제 불가능한 요소들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생의 후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를 소망한다. 더 많이 읽고 사색을 공유할 친구들과 재미있는 일탈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나와 세상의 모순 사이 괴리를 좁혀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