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몽환적 상상여행을 따라서
미술 시간외에 과외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스케치나 드로잉을 배우고 싶었지만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그림을 슥슥 잘 그리는 이를 보면 부럽다. 미술 감상을 위한 지식도 부족하다. 체계 없이 간혹 흥미로 책을 몇 권 읽은 정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갤러리를 지날 때면 방앗간을 지나는 참새처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가족들과 일이 있어 들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제임스 딘' 작품 전시회가 있다고 들었다. 좋아했던 배우여서 그를 추억하는 사진들이 전시되는 가보다 했는데. 입장료가 15,000원이나 한단다. 안내 링크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제임스 진'이라는 작가의 작품전이었다. 나의 관성적 기억으로 벌인 해프닝에 속 웃음을 지으며 전시실에 들어섰다.
난 어디를 가던 이방인이었다. 미국에서 성장했지만, 그곳을 진정한 고향이라고 느낀 적이 없었으며 중국어를 모르기에 아시아 역시 나에게 편안함을 안겨주는 고향이 아니다. 이 고립감은 내 예술의 기반이 되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그림자가 절실하다. 환대받지 못하는 곳에서 적절한 장소도 부여받지 못하는 인간들의 운명은 비참하다. - [여행의 이유] 130 쪽, 김영하
'성원권'은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성원은 사회의 누군가(somebody)가 되는 것이다. 성원이 되지 못한 자는 비주류가 되거나 아무도 아닌 자(nobody)가 된다. 여행자에게는 성원으로서의 일상이 없다. 여행자는 개별성을 잃어버린 노바디일 뿐이다.
예술은 내 안에 억압된 것을 표출하는 배출구이다.
제임스 진(James Jean, 1979년 ~ )은 대만 출신이다. 3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불혹의 미국인이다.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The school of visual art)에서 일러스트레이션학을 전공했다. 뛰어난 표현력과 개성 있는 자기 색을 가지고 있는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들 중 한 명이며 '아티스트들의 아티스트'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제임스 진은 자신을 이방인으로 정의한다. 가는 펜으로 세밀하게 그린 그의 작업은 동화적 판타지를 연상시킨다. 동서양의 상징이 뒤섞여, 신구, 시공을 넘나 든다. 사람들의 어떠한 의식의 프레임도 거부하듯 묵직한 통쾌함을 준다. 제임스 진은 작품을 통해 작가 자신의 정체성 탐구를 넘어 어떤 프레임도 없는 인간의 원시적인 모습으로의 내적 여행으로 감상자를 끌어들인다.
그의 완벽한 드로잉과 다채로운 색채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몽환적인 화면을 창조하는 중요한 요소다. 또한 동양과 서양의 다양한 도상들과 재료, 표현법을 혼합하고 동식물을 함께 그림으로써 그의 대표적인 하이브리드 도상을 창조한다. 미국과 아시아의 경계에 머무르는 작가의 분열된 정체성을 반영하는 혼성적 형상들은 독창적인 은유와 상징들과 어우러져 신비로우면서도 이질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두 눈뿐만 아니라 내면의 눈이 본 것도 포함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스케치는 마치 한 덩어리의 대리석을 깎아내는 것처럼 하나의 아이디어를 정교하게 다듬어 가는 과정이다.
제임스 진은 2006년 이후 본격적으로 숙련된 드로잉 테크닉을 통해 도시의 일상적 모습을 완벽하게 재구성한다. 2007년부터 2008년 제작된 드로잉에서는 주변 인물들과 일상의 모습, 만화 속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제임스 진은 본격적으로 순수 회화를 제작하면서 드로잉을 통해 작가의 독창적인 도상을 완성한다. 2011년 제작된 드로잉에는 동물과 식물, 자연과 인간 등 이질적인 요소들을 혼합해 탄생한 하이브리드가 존재하는 기괴한 세계가 담겨있다. 이 시기 드로잉에서는 작혹한 욕망을 대변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제임스 진은 다양한 패턴들과 서로 얽혀있는 인간들과 식물, 동물들의 모습들을 통해 그의 초기 작품에 나타나는 탐욕과 공포, 악한 본성과 죽음을 결집한 다층적 내러티브를 만들어간다. 2014년 드로잉들은 무한한 상상력이 응집된 결과물로써 작가만의 도상들이 극도로 치밀하게 표현되었다. 제임스 진은 완벽에 가까운 숙련된 드로잉 기술을 기반으로 선과 악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상상 이상의 캐릭터들을 창조했다.
모든 작품에는 나의 잠재의식과 내면의 욕망이 투영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