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첫 기차여행을 떠올리며..
부산에 출장 다녀왔다. 영동지방에서 부산을 가려면 보통은 7번 국도를 타야 한다. 맑은 날 해안을 따라 바다 풍경을 보면서 드라이브하는 맛이 일품이다. 대전에 용무가 있어서 그곳에 차를 세워두고 고속열차를 이용하려고 전날 미리 표를 예매해두었다.
교통의 오지인 강릉에도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면서 고속열차가 들어왔다. 고속열차는 영동지역을 서울에서 반나절도 안 되는 생활권으로 좁혀주었다. 대전에서 부산까지 고속열차로 한 시간 반 정도 소요되었다. 나는 주로 내 차를 운전해서 다닐 때가 많아서 고속열차를 몇 번 타보지 않았다. 요금은 조금 비싸지만 탈 때마다 그 쾌적함에 감탄을 한다. 지금 이 글도 대전으로 돌아가는 고속열차 안에서 쓰는 중이다.
어린 시절 기차를 처음 탔던 때가 떠올랐다. 설 명절 때 시골에 있는 외가에 가면서 탔었다. 명절 때 서울역은 귀성인파로 인산인해였다. 마치 춘절을 맞은 중국의 기차역이 딱 그 모습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 생활을 하는 촌남촌녀들로 역전과 대합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부분 설빔으로 제법 서울 사람 테를 내고 양손에는 선물 보따리를 챙겨 들었다.
어린 나 역시 서울 시민이 된 지 십 년도 채 되지 않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플랫폼으로 향했다. 적재용량이 가득 찬 트럭처럼 내 손에도 묵직한 보따리가 쥐어졌다. “엄마 손 꽉 잡아! 여기서 손 놓치면 큰 일 난다.” 당시 내 키는 어른 키의 반 밖에 되지 않았다. 인파를 헤치며 나가는 동안 내 머리와 얼굴은 사람들 엉덩이를 비벼대며 나가야 해서 무척 괴로웠다. 손을 꼭 잡고 가면서 새로 사입은 설빔 외투의 단추도 떨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식구들의 지정좌석에 도착하였다. 외투 속의 몸에서는 땀이 뻘뻘 흐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이제 선반에 짐을 올리면 되었다. “내 옷에 단추가 떨어졌어” 꽉 붙들고 있는 엄마의 손을 놓으며 올려다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어떤 아주머니의 손을 붙들고 따라온 것이다. 그 아주머니도 내가 자신의 자녀가 아님을 알아차리고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당황한 두 모자 아닌 모자는 본 모자를 찾아 나섰다. “엄마~”,”동민아~~” 나는 나대로 엄마를,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인파를 헤치고 왔던 길로 다시 다급하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내가 엄마를 찾는 동안 기차가 나를 남겨두고 떠날까 봐 걱정되었다. 내가 기차에 내려 엄마를 찾는 동안 엄마는 기차에서 날 찾고, 나는 플랫폼에 남겨지는 상상을 했다. 그때 “상호야~ 이 녀석이 어디 있었어! 엄마 손 꼭 잡고 따라오랬더니!” 암튼 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기적적으로 엄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다급하게 아들 이름을 부르며 인파 속을 헤짚으며 가셨다. 그 아주머니가 아들 동민이를 찾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기차 안에는 이동식 카트를 밀고 다니는 식품 판매원이 있었다. ‘홍익회’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KTX 개통 전까지 웬만한 열차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지금은 '코레일 유통'으로 이름을 바꾸고 다른 수익사업에 전념한다고 들었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카트는 그야말로 선물상자였다. 분홍색 그물 꾸러미로 포장된 귤, 삶은 달걀이 있었고, 양갱, 초콜릿, 땅콩, 오징어 등 술안주 거리도 팔았다. 시중보다 비싸긴 했지만,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시골 외가에 가려면 벌교에 내려서 완행열차로 갈아타야 했다. 외가에 당도하려면 역에서 내려 비포장길을 30분쯤 걸어야 했다. 어머니의 형제들과 친척들이 외가 인근 부락에 흩어져 살았다. 어머니의 사촌동생들은 벌교읍내로 학교를 다녔다. 통학을 하거나 볼 일이 있어 읍내로 갈 때면 기찻길로 걸어 다니곤 했다. 어린 내 눈엔 기차라도 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스러웠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 듯했다.
"기차가 오면 어떻게 해" 내가 물었다.
"여기에 귀를 대보면 기차가 오는 소리가 들려. 들어봐 봐"
중학교에 다니는 어머니의 사촌동생은 무릎을 꿇고 옆으로 숙여 레일 위에 귀를 갖다 대고 나를 보고 손짓을 했다. 무슨 소리가 들렸는지 정말 그 소리로 기차가 오는 걸 알 수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고속열차가 대전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면서 잠시 잠겼던 어린 시절 기차여행의 추억에서 깨어났다. 이젠 한 사람 한 사람 표를 확인하며 검표 표시를 찍어주지도 않는다. 스마트폰 앱으로 예약하고 그것으로 표를 대신한다. 스마트 시대의 편리함과 함께 어린 시절 기차여행의 기억도 추억의 서랍으로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