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동 161번지의 추억
나는 종로 키드였다. 학교가 부근에 있어서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종로 일대를 쏘다녔다. 계동에 살다가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지면서 이사를 갔다. 이사 간 곳은 돈의동 161번지, 종로 2가 즐비한 건물들 등 뒤로 난 골목 어디쯤이다. 그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피맛골로 이어졌고 아래로는 피카디리, 단성사가 있었다. 지금은 그때와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두 개봉관 앞에 영화를 보기 위해 뱀 똬리처럼 여러 겹으로 줄지은 사람들도, 암표 장사도 더 이상 볼 수 없다. 골목과 접해있는 피카디리 극장의 높은 외벽은 어두운 벽돌색 페인트가 발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골목길 따라 포장마차들이 카바이드 불빛을 일렁이며 퇴근길 손님들의 발길을 붙들었다. 포장마차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홍합 솥이 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해삼, 멍게, 소라며 순대, 군참새 같은 안주거리들이 즐비했다. 유행이었는지 값이 싸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포크나 이쑤시개 대용으로 옷핀을 길게 펴서 뭉텅 썰어놓은 무에 꽂아두었다. 어린 내 눈에도 맛있어 보여 지나다니며 침을 흘리곤 했다.
이사 간 곳은 오래된 한옥이었다. 명동칼국수라는 식당 옆으로 오른쪽으로 꺾인 뒷골목 끝 막다른 집이었다. 낡은 한옥 대문 안쪽으로 'ㄷ'자 형태로 방이 여섯 개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집에는 집주인 가족이 살았는데 아저씨의 딸 영숙이는 나와 같은 반이었다. 영숙이는 코가 유난히 납작했다. 아버지의 코를 물려받은 탓이다. 어느 날인가 영숙이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골목길을 지나갈 때 두 납작한 코를 보고 혼자 낄낄대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일반적인 대청의 반 정도 길이의 세로로 좁은 마루에 붙어있는 건넌방은 서울여상에 다니는 영숙이 고모가 사용했다. 안방 안쪽으로는 뒷방이 붙어 있었는데 거긴 영숙이 할머니가 기거하셨다. 영숙이와 나는 거기서 바둑알로 오목을 두거나 알까기를 하며 놀곤 했다.
나머지 방 네 개는 세를 놓았다. 문간방에는 시골에서 올라온 20대 형아들 서너 명이 자취하였다. 싸구려 비둘기색 톤의 맞춤 양복을 노타이 차림으로 입고 다녔다. 헐렁한 통 큰 양복바지 차림으로 손거울 들고 또끼 빗질을 하곤 했다. 영숙이 고모 바로 옆 모퉁이 방은 복실이 아줌마가 살았다. 바로 부엌처럼 사용하는 공간에 쪽마루와 방이 위치한 듯했다. 아주머니는 셰퍼트 한 마리와 같이 살았다. 그 개의 이름이 복실이였다. 나는 그 개가 무서웠다. 마당을 지날 때도 복실이로부터 가급적 멀리 몸을 움츠리며 빠르게 지나다녔다. 복실이 아줌마네 옆방은 40대 초반쯤 되는 아저씨가 가내공장으로 사용했다. 주로 유리로 된 실험 도구를 만들어 종로 일대에 납품하였다. 그 방에서는 반복적인 작은 기계음이 들렸는데 메스실린더의 표면에 눈금을 그어주는 기계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저씨는 눈금이 잘못 그어진 메스실린더며 비커 같은 것을 장난감으로 내게 챙겨주곤 했다. 가내공장에 벽을 사이에 두고 우리 가족이 사는 방이 맞붙어 있었다. 영숙이네 다음으로 우리 식구가 많았다. 짧은 복도처럼 마루가 붙어 있는 제법 큼지막한 단칸방이었다. 우리 집에는 부모님의 형제들이 군식구로 더부살이하며 직장을 다녔다.
집 마당의 아침 풍경은 재미있다. 이른 아침 부지런한 복실이 아주머니가 제일 먼저 자리를 잡는다. 수도가 제일 가까운 곳은 순대 재료인 돼지 창자를 풀어놓은 커다란 고무 다라이가 차지한다. 그리고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방위 생활을 했던 막내 삼촌, 오리엔트라는 시계회사에 다니던 외삼촌이 세수며, 양치질을 한다. 영숙이 고모는 삼촌들과 마주치면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부끄럼을 타서인지 삼촌들이 퇴장하고 나서야 마당에 등장했다.
악! 아줌마 다라이 물을 여기다 부으면 어떻게 해욧! 발에서 냄새나겠네
옆으로 좀 비켜서 봐봐
아 저 비눗물 좀 씻어내고요!
아침 집 마당은 도떼기시장이 된다. 문간방 도끼빗 형아들은 한바탕 소란이 끝날 즈음 느지막이 나와 휘파람을 불며 나갈 채비를 하고 했다.
이제 번듯한 중소기업 사장이 된 외삼촌은 몇 년 전인가 그 부근을 지나다가 옛날 생각에 젖어 돈의동을 찾은 적이 있다. 몰라볼 만큼 풍경이 달라졌지만 골목의 윤곽은 남아 있었다. 포장마차를 지키고 있는 낯익은 얼굴도 보았는데, 복실이 아줌마와 같이 포장마차를 하던 이웃집 또 다른 아주머니였다. 그분도 이젠 초로의 노인이 되었다. 복실이 아줌마는 말년에 관절염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등졌다. 영숙이는 코를 성형수술 했다. 지금은 콧대 높은 아줌마로 애들 낳고 잘 산다. 이웃집 정룡이네는 돈의동을 떠났고 애들이 잘 안풀렸다. 한나네 오빠 한구는 한양공대를 나와서 대기업 들어가 잘 살고 있다.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내게 전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