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

by 타마코치

'잠수종과 나비'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장 도미니크 보비'라는 사람이 썼다. 그는 엘르의 편집장이었다.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이라고 하면 프랑스에서 글쟁이로는 최고의 영예로운 자리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1995년 운전 중 뇌출혈로 쓰러진다. 그리고 3주 후에 깨어나지만 락트-인 증후군(locked-in syndrome) 상태에 빠진다. 신체적으로 잠긴 상태로 전신마비를 말한다. 그는 오직 왼쪽 눈만 깜빡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장 도미니크 보비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눈 깜빡 임의 횟수로 약속된 알파벳들을 한 자씩 받아적도록 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소설 '잠수종과 나비'는 이런 방법으로 15개월 만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 책이 프랑스에서 간행된 지 며칠 후 영화 속 나비처럼 저세상으로 홀연히 떠난다.


'잠수종과 나비'는 내용보다 영화의 원작자 때문에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그런 한계상황에서 그는 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을까? 글쓰기가 과연 무엇이길래 그는 자신의 마지막 삶의 시간을 쏟아부은 것일까? 기록, 정보전달, 생각 정리, 자기표현 등 글을 쓰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글쓰기에 능숙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심리적 장벽이 높게 느껴진다. 실제로 글쓰기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글쓰기 책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들이 있다. 일단 뭐든 무조건 시작하라,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지 마라, 많이 읽어라, 끊임없이 고쳐라 등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영어 공부하듯이 꾸준하게 관심을 두고 즐기라는 말로 이해된다. 세상의 이치와 마찬가지로 왕도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가 '자아실현'과 '치유'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욕구에 대한 매슬로우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생리적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상위 단계의 욕구에 대해 열망을 갖게 된다. 그는 이것을 상위 동기(메타 동기, metamotivation)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메타 동기가 부여된다.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이러한 인간욕구의 정점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유용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글쓰기로 이어지게 된다. 네트워크의 시대가 되면서 메타 동기는 우리에게 '연결의 욕구'도 부여한다. O2O(onlie to offline)의 스마트 시대에도 글쓰기가 그 중심에 놓여있다.


아이들은 창의적이다. 장난감이 주어지지 않으면 놀잇감을 만들어서 논다. 놀잇감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면 상상력을 끄집어내어 놀이를 한다. 나는 인간이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모든 인간은 창의적 놀이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넘쳐나는 장난감들로 둘러싸여 있다. TV, 컴퓨터, 스마트폰은 물론 이외에도 우리의 창의적 시간을 빼앗아가는 놀잇감들이 많다. '궁즉통'이라는 말처럼 결핍은 우리를 창의적으로 만든다. 무언가 집중해 일하거나 쉬고 싶을 때 스마트 기기들을 잠시 꺼두곤 한다. 외딴 지방에 허름한 방을 얻어 놓고 전화도 끄고 집필 작업을 하는 이도 있다. 자발적인 고립상태를 만들어 창작 작업의 효율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상당수의 세계적 문학작품들이 작가에게 엄혹한 처지에서 쓰였다. 감옥에서, 전쟁터에서, 수용소에서와 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서 창의적인 걸작들이 태어났다. 시각을 달리하면 글쓰기가 작가 자신에게는 잠수종에서 벗어나는 상상 속 나비의 날갯짓이며, 회복과 치유의 몸짓이기도 하다.


페로몬(pheromone)은 거의 모든 동물에서 분비되는 개체 상호 간 커뮤니케이션에 사용되는 체외 분비성 물질이다. 개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많은 외분비샘을 통해 다양한 페로몬을 분비한다. 이것을 통해 개미 한 마리의 감정상태가 수백만의 개미와 동시에 같은 상태가 된다. 남들이 경험한 것을 똑같이 느낀다는 것, 자신이 느낀 것을 남이 공감하게 한다는 것은 놀라운 감각이다.


글은 페로몬과 같다. 그래서 펜은 칼보다 강했고 위정자들은 글 쓰는 자를 두려워했다. 글 쓰는 행위는 우리를 치유하며,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글 쓰는 자로부터 시작된 치유와 자유는 그것을 읽는 자들에게도 전파된다. 글쓰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미래에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 다울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존재하며 치유되며 해방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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